김상직
金尙直1876 ~ 1929. 10.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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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76년경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가천면(伽泉面) 법전동(法田洞)에서 태어났다. 한자를 달리하여 김상직(金相直)으로 쓰기도 하였고, 김성진(金聲振)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당시 44세로 성주군 대가면(大家面) 도남동(道南洞)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으며, 대가면 옥화동(玉花洞) 소재 기독교 북장로회 교회에 다녔다. 1919년 4월 1일 옥화동 교회에서 유진성(兪鎭成)으로부터 다음 날 읍내 장터에서 벌어질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았다. 유진성은 성주 읍내 예배당의 조사(助事, 안수 받지 않은 목사)로 이미 수차례 옥화동 예배당을 찾아와 영수(領袖, 안수 받지 않은 장로)인 홍진수(洪鎭洙)와 조사 김재곤(金在坤)에게 만세 운동을 권유하였다. 유진성은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만국강화회의에서 ‘조선’을 독립시킬 논의가 있었고, ‘조선’ 각지에서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며 독립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독립 시위를 응원하고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주 읍내 장날인 4월 2일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그런 후 신도들을 불러 참여를 권유하였다. 이때 김석규(金錫奎)·김치권(金致權)·김학이(金鶴伊) 등과 함께 참여 권유를 받고 만세 운동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1919년 4월 2일 오후 1시경 계획한 대로 동지들과 함께 성주면 경산동(京山洞) 관제묘(關帝廟) 뒷산에 모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장터에 있었던 사람들이 합세하여 함께 만세를 불렀다. 만세 소리를 듣고 성주경찰서의 경찰들이 와서 해산을 종용하였으나 시위대는 만세 운동을 계속하였다. 저녁 무렵 일제 경찰이 총을 쏘며 시위대를 진압할 때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5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이후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고, 1929년 10월 26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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