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집
金祥集1887. 12. 22 ~ 1939. 9.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동청년당
- · 아사동맹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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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2) 1887년 12월 22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여항면(艅航面) 평암리(平岩里)에서 태어났다. 집안 배경, 성장 환경 등은 알 수 없다. 1919년 3월 19일 전개된 함안읍의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함안읍의 3·1운동은 서울의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3월 5일경 귀향한 조한휘(趙漢輝)·강기수(姜琪秀)·한관렬(韓灌烈) 등 지역의 청년 유지들이 주동하여 계획되었다. 조한휘 등은 이희석(李喜錫)·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과 만나 서울의 3·1운동 상황을 전하는 동시에 함안에서도 만세 시위를 벌이자고 논의하였다. 이들은 3월 19일의 함안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하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3월 19일 12시경 이찬영 등은 비봉산에 올라 고천제(告天祭)를 지낸 후 봉성동(鳳城洞)에 모였고, 아침부터 운집하기 시작한 군중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부하였다. 태평루(太平樓)에 대형 태극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자, 수백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2시경 3,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과 함께 함안 경찰주재소로 시위행진하였다. 사기가 충천한 시위 군중은 함안 경찰관주재소·군청·등기소·우편소·부산지방법원 함안출장소·함안심상소학교 등을 시위행진하며 기물을 파괴하였다. 이때 마산 중포병대대 병력이 출동하여 현지 일제 경찰과 함께 총검을 휘두르며 진압하면서 주동자들을 검거하였다. 이 만세 시위로 붙잡혀 1919년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소요」 혐의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그 후 1920년 곽인협(郭寅協)·조계승(曺啓承)·강한순(姜翰淳)·윤창기(尹昌基) 등과 함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죽음도 불사한다는 아사동맹회(餓死同盟會)를 조직하였고, 1923년부터는 창동학교(昌東學校)를 건립하는 등 육영사업에 종사하였다. 1929년 11월 8일 조직된 함안군이재민구제회(咸安郡罹災民救濟會)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9년 9월 1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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