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순
姜大珣1892. 1. 16 ~ 1944. 8.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독립의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함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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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2년 1월 16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함안면(咸安面) 봉성동(鳳城洞)에서 태어났다. 진주 강씨 집안은 함안의 대표적인 이족(吏族) 가계로, 함안 조씨와 재령(載寧) 이씨, 순흥(順興) 안씨와 같은 사족(士族) 가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지역 유지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집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배우며 유교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1913년 의병장 임병찬(林炳瓚)이 고종의 밀명으로 조직한 독립의군부에 가담하였으며, 1915년에는 연해주로 건너가 무장 독립단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 귀국하여 고향에 머물고 있다가 1919년 3월 함안면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함안면 시위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한 한문 교사 조한휘(趙漢輝) 등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계획되었다. 조한휘 등은 여항면(閭巷面) 동명학교(東明學校) 교사인 이희석(李喜錫), 대산면(代山面) 한문 교사인 안지호(安知鎬) 등과 읍내 장날을 기해 거사를 치르기로 결의하고, 인근 주민에게 계획을 알리며 동지를 규합하였다. 여기에는 각 마을에 거주한 동성(同姓)의 유지들이 대거 참여하였는데, 집안에서도 강대익(姜大益)·강대한(姜大漢) 등 형제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3월 19일 정오 비봉산(飛鳳山)에 올라 고천제(告天祭)를 지낸 후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쳤다. 오후 2시 3,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와 행진하다 함안경찰관주재소로 달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집기, 문서 등을 훼손하였다. 이어 함안군청과 부산지방법원 함안출장소·함안우편소·함안공립보통학교·함안공립심상소학교 등을 차례로 습격하였다. 오후 5시경 지원 요청을 받고 도착한 마산 대대 병력과 현지 경찰이 합세해 총검을 휘두르며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이후 참여자에 대한 검거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5월 1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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