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권
金相權1924. 8. 8 ~ 200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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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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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924년 8월 8일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복흥면(福興面) 동산리(東山里)에서 중류 농가의 3남으로 태어났다. 순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4월 전주농업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에 재학 중인 1941년 11월에 같은 학교에 재직하던 일본인 사토(佐藤) 선생의 배척을 모의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퇴학을 당하였다. 퇴학당한 후 1943년 9월에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시험을 보았다. 시험 당시 시험관이 전주농업학교를 다닐 당시 일본 선생 배척 문제에 대하여 일본인 선생이라는 이유로 배척하려고 한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매우 분개하면서 이 같은 행동은 결국 한민족에 대한 압박이며, 현 상황대로라면 도저히 한민족의 행복을 바랄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을 일본제국의 지배로부터 이탈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이로 인해 결국 시험에 불합격하였다. 1943년 9월 26일 오후 9시경 전북 전주부 풍남정(豊南町)에 사는 친구 유승웅(柳勝雄)의 집에서 유승웅에게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면서, 한국의 독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른바 ‘대동아전쟁’이라는 현 상황에서 해군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가 전사한 이후 일본의 전쟁 상황이 흔들리고 있으며, 애투섬(Attu Island) 패배 등의 사례를 보면 일본군에게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제가 곤궁이 점차 증가하여 반드시 패전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일본이 패전하면 전승국인 미국은 일본인을 증오하여 가혹하게 대우할 것이나 우리 한국인에 대해서는 상당히 고려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미국인이 개전 전에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교회당에서 한국인과 눈물을 흘리며 이별한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미국은 한국을 보호하고 그 독립을 허용할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이 기회에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독립이 실현된다면 한국인의 행복이 초래되지만, 한국인에게는 애국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청년들을 동지로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하자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였다. 1943년 10월 24일경 유승웅에게 이러한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고, 유승웅은 이 편지를 읽고 그와 뜻을 같이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1943년 10월 일제에 의해 탐지되어 붙잡혔다. 1944년 4월 22일에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및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정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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