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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순

金相淳

1877. 12. 20 ~ 1956.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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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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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羅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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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77년 12월 20일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남평면(南平面) 대교리(大橋里)에서 태어났다. 1921년 활동 당시 직업은 기모노 판매상(吳服商)이었다. 1919년 (음)10월경 같은 마을 출신 강중현(姜中鉉)의 권유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에 가입하였다. 조선민족대동단은 1919년 3월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전 조선 민족의 대동단결을 표방하고 서울에서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이들은 ‘조선 독립’의 달성, 세계의 영원한 평화 확보, 사회주의를 철저히 실행할 것 등 3대 강령을 내세우고 활동하였다. 1919년 5월 최익환 등 단원들이 군자금 모집 중에 체포되어 조직의 일부가 노출되었지만, 이후에도 지하신문인 『대동신보』 발행을 통해 더욱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민족대동단은 1919년 8월 29일 국치일을 기념한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고 같은 해 10월 초 제2회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에는 의친왕 이강(李堈)을 망명시켜 임시정부에 참여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1919년 11월 의친왕 탈출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전협 등 주도 인물들이 체포되어 무산되고 말았다. 1919년 (음)10월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고 바로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이때는 조선민족대동단이 세상에 알려지고 활동은 활발해졌지만, 일제 경찰의 감시망도 더 치밀해졌다. 일제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동지 중 한 사람인 김강산(金剛山)과 함께 충남 논산군 윤모(尹某) 집으로 찾아가 독립운동에 협력할 것을 호소하고 군자금 1,000원 모집에 성공하였다. 1920년 (음)9월 상순경에는 같은 고향 출신으로 함평군에 거주하는 오종근 등 동지들과 ‘조선 독립’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였다. 1921년 1월 1일에는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 거주하는 양회현(梁會絢)의 집에 찾아가 수천 원의 군자금을 요구하였다. 이 시기 단원 대부분은 이미 체포되어 국내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국외로 건너가 항일운동을 이어갈 계획이었다. 여비와 활동에 필요한 경비가 시급하였다. 양회현의 거부로 군자금 마련은 실패하고 활동이 일제 경찰에 포착되어 체포되었다. 수개월의 조사 끝에 1921년 6월 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정치 변혁을 목적으로 치안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등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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