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
金尙連186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5) 1869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가산면(加山面) 출신이다. 1920년에 의주에서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 총재로 알려진 오능조(吳能祚)의 권유로 지단(支團)을 조직하고 서기를 맡아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단체는 1919년 3월 중국 안둥현(安東縣, 현 단둥)에서 안병찬(安秉瓚)을 총재로 하여 결성된 단체로서, 평북 출신 청년이 다수 참여하였다.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모금 및 조달,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대표자 후원, 임시정부의 정책·정령(政令)을 선전하는 기관지 『반도청년보(半島靑年報)』 발행 등이 주요 활동이었다. 그러던 중 그해 9월경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활동이 일시 정지되었다가, 그해 11월 중국 콴뎬현(寬甸縣)에서 조직된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로 흡수되었다. 오능조 역시 이 시기 대한청년단연합회 서기로 임명되어 총재 김승만(金承萬) 등을 보필하여 조직 확대에 이바지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국내 각지에서는 192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대한독립청년단’혹은 ‘독립청년단’의 이름 아래 특히 평남과 평북을 중심으로 여러 지단이 조직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2월 15일경 오능조의 권유로 의주군 가산면에 거주하는 박의식(朴義植)·계용수(桂龍守)·김진기(金珍基) 등과 함께 대한독립청년단 지단을 조직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지단의 서기가 되었고, 당시 단장은 박의식, 부단장은 계용수, 재무 담당은 김진기가 각각 맡았다. 부단장 계용수가 가산면협의회 의원 겸 동리 이장을 맡았을 정도로 지단 조직에 참여한 다수가 비교적 인근에서 명망과 재산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20원에서 50원의 운동 자금을 내어 오능조에게 제공하였으며,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박세윤(朴世潤) 등을 단원으로 가입시켜 입단금으로 200여 원을 모집하여 오능조에게 제공하였다. 단원들은 다시 동지를 모집하여 인구세로 각자 1원 50전을 징수하는 등 활동을 확장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현금 4만여 원을 인구세 등의 명목으로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전달하려고 오능조에게 송부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21년 7월 1일 단원들과 함께 의주경찰서에 붙잡혔다. 그해 10월 15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및 범인장닉(犯人藏匿)죄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동지들과 함께 평양복심법원에 항소를 제기하였는데, 결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