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열
金商說185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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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8) 1852년 서울 종로구 장사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10월 조선민족대동단(대동단)에 가입할 당시 70세의 고령 노인이었다. 양반 출신으로 평소 독립을 열망하였으며, 대동단의 가입은 같은 집에서 살고 있던 대동단원 이신애(李信愛)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이 무렵 대동단은 제2회 독립선언서 발표와 함께 3·1운동 때와 같은 대규모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3·1운동처럼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3인의 민족 대표를 선정하였다. 이때 노인 대표의 자격으로 33인에 이름을 올렸다. 대동단은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던 1919년 3월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서울에서 민족 독립을 위해 비밀리에 만든 단체다. 이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만세 시위에 나서는 것을 보고, 사회 각층의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결집해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수행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조직 체계도 황족(皇族)·진신단(縉紳團)·유림단(儒林團)·종교단(宗敎團)·교육단(敎育團)·청년단(靑年團)·군인단(軍人團)·상인단(商人團)·노동단(勞動團)·부인단(婦人團)·지방단 등이었다. 종교단 총대(總代)에는 정남용, 유림단 총대에는 이기연(李起淵)과 이내수(李來修), 상인단 총대에는 양정(楊楨), 청년단 총대에는 나창헌, 군인단 총대에는 유경근(劉景根), 노인단 총대에는 김상열, 부인단 총대에는 이신애를 선출하였다. 그런데 5월 초 조직 일부가 발각되고 일제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는 상황에서 대동단은 본부의 해외 망명을 추진해갔다. 총재 김가진(金嘉鎭)이 먼저 상하이(上海) 망명을 단행한 이후 의친왕 이강(李堈)의 해외 망명과 함께 커다란 만세 시위를 일으켜 독립운동의 분위기를 진작시킨다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1919년 10월 대동단이 이강·김가진을 비롯해 사회 각층 33명을 선정할 때, 이신애의 부탁으로 자신은 물론 대동단의 목적에 동의하는 김익하(金益夏)·이종춘(李鍾春)·이겸용(李謙容) 등을 가입시키고 민족대표에 서명하도록 하였다. 선언서에서는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고 4월 10일 정부를 건설하였던 바, 완고한 일본은 시세의 추이를 돌보지 아니하고 한갓 이리 떼의 야만적 성질로써 멋대로 억압하고 대낮에 군중을 총칼로 무찌르고 성읍과 촌락을 불지른 것은 진정 인류 양심으로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붉은 충성의 뜨거운 피는 결코 이러한 비정상적 압박에 위축되지 아니하고 더욱 정의와 인도로써 용왕매진(勇往邁進)할 따름이다. 만일 일본이 끝내 그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은 부득이 3월 1일의 공약에 의하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대의 성의와 최대의 노력으로써 혈전을 불사할 것을 성명한다”라는 내용을 담았고,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삼았다. 민족 대표에 서명한 후 정규식(鄭奎植)·나창헌(羅昌憲)·이종욱(李鍾郁)·한위건(韓偉鍵) 등과 여러 차례 만나 제2회 독립선언서 발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 이때 대동단이 주도한 만세 운동 계획에는 임시정부의 국내 특파원, 대한독립애국단, 대한민국청년외교단 등 비밀단체의 인사들도 참가해 연합 시위의 성격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11월 11일 이강의 망명을 단행한 직후 만세 시위를 벌여나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강이 중국 안둥(安東, 현 단둥)까지 갔다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망명이 불발로 끝나자, 만세 시위 계획도 차질을 빚고 말았다. 거사일을 11월 27일로 미루고, 나창헌·이신애·안교일·정희종 등이 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거사를 준비해갔다. 민족 대표들은 중국 요리집 장춘관에서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었다. 11월 27일 이종춘·김익하 등 5명과 함께 조선총독부에 선언서를 우편으로 발송하고 장춘관에 가서 기다렸으나, 만세 시위가 하루 연기되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렇지만 11월 28일 오후 서울 안국동 파출소 앞 광장에서 열혈 단원들이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동시에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만세’ 깃발을 흔들면서 만세 시위를 거행하였다. 이 일로 1919년 12월 초 일제 경찰에 붙잡혀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출판법·보안법 위반으로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복심법원에 항소해 1921년 5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기까지 1년 4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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