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金相勛1879. 12. 3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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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7) 1879년 12월 30일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하가면(下加面) 지명동(池明洞)에서 태어났다. 다른 자료에는 생일이 12월 16일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명은 김상훈(金相勳)이다. 집안 환경과 성장 과정 등은 알 수 없다. 1919년 3월 15일 하가면 화대동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명천군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4일 오전 11시 하가면의 면 소재지인 화대동(花臺洞) 화대시장에서 시작되었다. 5,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한 이날 시위는 함북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시위대는 화대헌병분견소 앞으로 행진하면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에 헌병들은 길주헌병대(吉州憲兵隊)에 병력 파견을 요청하는 한편,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5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화대동의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해 듣고, 같은 마을의 김성련(金成鍊)·김익련(金益鍊)·최우용(崔禹鎔)·현용묵(玄龍默) 등과 함께 3월 15일 화대시장에서 다시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만세 시위에 사용할 깃발을 제작하였다. 3월 15일 화대시장에는 1,000여 명이 회집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시위대를 주도하면서 하가면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면사무소에서 시위대는 일제의 앞잡이로 면민을 괴롭혔던 면장 동필한(董弼漢)에게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다. 동필한이 요구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분별없는 일이라고 타이르자, 김성련·김익련·박승룡(朴承龍)·최계락(崔啓洛)·허영준(許英俊) 등이 그를 구타하였다. 다시 시위대는 화대헌병분견소 앞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분견소 헌병들은 길주헌병대에서 파견된 기마 헌병 13명과 함께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시작하였다. 그로 인해 5명의 사망자와 11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김성련·김익련·김재한(金在漢)·최우용·허영준·허현(許鉉)·현용묵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7월 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벌금 30원, 노역 30일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여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죄는 무죄 판결을 받아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11월 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이후 자세한 행적과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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