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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

金錫範

186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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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석범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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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중화(中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중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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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1861년경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풍동면(楓洞面) 복정리(福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일 중화군 상원면(祥原面) 신읍리(新邑里)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중화군 상원면 천도교구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중화군의 독립 만세 운동이 시작되었다. 2일 상원면 천도교도들은 기독교도 등과 함께 신읍리에 있는 상원경찰관주재소를 포위 공격하였다. 상원면을 순시 중이던 중화경찰서장도 주재소에 갇혀버렸다. 오후 4시경 평양으로부터 일본군 증원부대가 파견되어 다수의 주모자를 체포하고 시위 군중을 해산하였다. 만세 시위는 계속되어 3일 오후 2시 약 200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신읍리 읍내를 돌아다니다가 전날 시위로 체포된 사람들이 갇혀 있던 천도교구실로 몰려갔다. 시위대는 일본군과 경찰의 총검 사용으로 10여 명이 부상당하고서야 해산하였다. 하지만 오후 3시 신읍리 상원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고 물러났다가 4시에 다시 주재소로 행진하여 일본 군경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는 평양으로부터 보병 18~20명을 추가로 파견하여 탄압하였고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이날 시위로 체포된 인원은 32명이고, 중상자 4명을 포함하여 4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붙잡혀 1919년 6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한국 민족이 독립 만세를 부른 것은 천리(天理)와 만국 공법에 부합하는 것으로 처벌은 부당하다’라며 항소하였지만 7월 24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정확한 옥고 기간과 출옥 이후 자세한 행적과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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