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이
金錫伊1884 ~ 1937. 11.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영덕 지품면 3
- · 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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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84년경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지품면(知品面) 황장동(黃腸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3월 19일 지품면 원정동(院前洞)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영덕 지역의 3·1운동은 3월 18일 영해(寧海) 장터에서의 대규모 만세 시위로 시작되어 4월 4일 남정면(南亭面)의 만세 시위로 끝났다. 만세 시위가 일어난 곳은 영덕군 내 총 9개 면 중 6개 면, 즉 영덕면·영해면·남정면(南亭面)·지품면·병곡면(柄谷面)·창수면(蒼水面)으로 그 중에서도 영덕 북부의 3개 면(영해면·병곡면·창수면)의 만세 시위는 경북 내에서도 가장 격렬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만세 시위 첫날인 18일에는 영해면·영덕면·병곡면 등지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영해면의 시위는 영덕군 지품면 낙평동(洛坪洞) 교회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이 제안하였으며, 낙평동 구세군교회 참위로 있던 권태원(權泰源)과 병곡면 송천동(松川洞) 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 등이 참여하여 세력을 규합해갔다. 한편, 영덕면의 시위는 김세영의 부탁을 받아 같은 교회 영수(領袖) 김혁동이 영덕면 금호동(錦湖洞) 교회 조사 강우근(姜佑根)을 찾아간 것을 계기로 태동하였다. 영해면의 시위는 병곡면 시위와 창수면 시위로 이어졌는데, 병곡면의 시위는 영해면의 시위대 중 일부가 병곡면까지 이동하여 시위를 전개한 결과였다. 지품면 원정동의 만세 시위는 황장동 교회 영수인 주명우(朱明宇)가 주도하였다. 김세영이 파견한 김중명(金重明)을 통해 만세 시위 계획을 알게 되었고, 그에 맞추어 원정동의 장날인 19일에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주명우는 ‘대한 독립 만만세’를 적은 깃발을 제작하여 거사 당일 정오에 깃발을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치는 한편, 군중에게 “한국 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자”, “죽기를 각오하고 독립운동을 하자”라는 내용으로 연설하였다. 만세 운동 당시 장터에 있었는데, 주명우 등이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를 따라 불렀다. 그와 더불어 정순용(鄭順用)·김주일(金周日)·박기동(朴基東) 등이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일제 경찰은 강제적으로 해산을 종용했는데, 주명우 등이 검거되자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度)를 선고받았다. 이후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고, 1937년 11월 2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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