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명
金善明1861. 11. 1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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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861년 11월 13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남사리(南沙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산청군 신등면(新等面)과 단성면 시위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산청군 시위는 진주(晉州)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읍내와 신등면·단성면 등지에서 주로 일어났다. 3월 19일 신등면 단계리 시장에서 일어난 첫 시위는 20일까지 이어졌으며, 21일에는 단성면 성내리(城內里) 시장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신등면에 거주한 김영숙(金永淑)은 고종 인산에 참여한 아들 김상준(金相峻)을 통해 독립선언서를 입수하고, 19일 아들과 함께 단계리 시장에서 시위를 일으켰다. 이날 아들 김상준 등 5명이 연행되자 이튿날인 20일 도산면(都山面)의 정태륜(鄭泰侖) 등과 함께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오후 2시경 단계리 시장에 모인 600~700명의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는데, 이날 신등면 주민의 한 사람으로 시위에 참여해 만세를 고창하였다. 시위 군중이 단성면 성내리 시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하자 단성면과 인근 진주·거창 등지에서 일본 헌병대가 출동해 주도 인사들을 연행하고 시위 군중을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튿날인 21일에는 전날 연행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단성면 성내리 시장에서 벌어졌다. 오전 11시경 성내리 시장에 모여 있던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후 헌병주재소와 면사무소, 보통학교로 통하는 입구 도로에 방어선을 치고 있던 일본 헌병에게 다가가 연행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헌병이 응하지 않자 오후 3시경 다시 찾아가 재차 요구하였으나, 역시 응하지 않으므로 함성을 지르고 곤봉을 휘두르며 헌병들이 치고 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헌병을 폭행하고 소지한 총기를 빼앗아 파손하였다. 단성헌병주재소 입구까지 밀린 헌병들이 주재소 정문에서 실탄을 발포하였는데 그 총탄에 맞아 부상당하였다. 3월 20~21일 이틀간 신등면과 단성면 시위에 참여한 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8월 1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9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1920년 9월 17일 출소하였다. 이후 자세한 행적과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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