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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제

金善濟

1891. 3. 27 ~ 1959.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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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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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順天)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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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1년 3월 27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낙안면(樂安面) 남내리(南內里)에서 유생인 김종주(金鍾胄)의 아들로 태어났다. 같은 마을에 사는 유생 유흥주(劉興柱)는 평소 일제의 식민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 독립 문제가 제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 독립의 의사를 표현하고자 하는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1919년 4월 13일 오후 2시 무렵 낙안읍성 서문 밖에서 당일 낙안읍내 장날을 기회로 낙안면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자는 부친 김종주와 유흥주의 제안을 듣고 이에 참여하였다. 이날 김종주와 유흥주가 미리 자신 집에서 조선독립기(朝鮮獨立旗), 대한독립기(大韓獨立旗)라고 크게 글씨를 쓴 태극기를 박태문(朴太文)·배형주(裵炯柱)·배윤주(裵潤柱) 등 수십 명과 함께 대나무 장대에 만들어 매고, 낙안읍성 서문으로 나아가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이 과정에서 성내에 살던 15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여 크게 독립 만세를 외쳤다. 서문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일본 헌병 노다(野田喜一)와 마쓰오카(松岡範三郞) 등이 이끄는 헌병대가 출동하여 무차별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이때 아버지 김종주가 ‘총검으로 찔러 죽이려면 죽여보라’라고 말하며 가슴을 풀어헤치고, 시위 참가자들을 북돋우며 헌병의 총칼을 빼앗으려는 과정에서 양손에 부상을 입었다. 그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마쓰오카의 총을 빼앗으려고 저항하다가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허리가 찔리고 등에 큰 부상을 당하였다. 순천 자혜병원으로 이송된 뒤 체포되었다. 같은 해 5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원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경성복심법원으로 이송하였는데, 10월 10일 공무집행방해죄는 무죄가 되고 보안법 위반 혐의만 인정되어 징역 6개월(미결구류일수 중 100일 본형 산입)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후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고, 1959년 12월 3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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