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
金聖奎187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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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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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78년경 태어났고, 1919년 3·1운동 당시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해월면(海月面) 벽란리(碧瀾里·碧瀾渡)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나이는 42세였고, 직업은 목재상이었다. 1919년 3월 23일 해월면 벽란리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전국에서 3·1운동이 확산하고 있을 때, 연백군 벽란리에서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같은 마을에 거주하던 잡화상 정원호(鄭源浩)와 함께 기독교회 부속 사립학교 교원 등과 협의하여 3월 23일 벽란리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3월 20일 경 정원호는 인접한 연백군 유곡면(柳谷面) 금곡리(金谷里)의 주시향(朱時鄕) 등에게 독립 만세 운동 계획을 통보하였다. 3월 23일 벽란리에서 기독교계 학생, 동네 주민 등 100여 명과 함께 구한국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대는 용현헌병주재소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해산되었고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정원호와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3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국외 강대국들이 전쟁을 그만두고 약한 것을 도와 강한 것을 꾸짖고’ 있다고 하며, ‘한민족으로서 자연 화기 발흥하여 동포들과 만세를 부른 사실로 징역형으로 벌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라며 상고하였으나 7월 10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이후 자세한 행적과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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