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길
金成吉1892. 12. 22 ~ 1942. 6.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92년 12월 22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북부리(北部里)에서 태어났다. 집안 배경, 성장 과정 등은 알 수 없다. 3·1운동 당시 재봉업(仕立職)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3월 13일 경주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박문홍(朴文泓)·박내영(朴來永)·윤기효(尹琪涍) 등과 함께 주도적으로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여 실행하다가 거사 직전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서울에서의 3·1 독립 만세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와중에 3월 8일과 10일에 대구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거행되었다. 이는 다시 경북의 주요 도시인 경주 지역에도 파급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먼저 경북 경산군 고산면 사월리(沙月里) 교회 목사인 김기원(金基源)은 기독교 조직을 활용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거행하고자 세력을 규합하였다. 이에 경주면 도동리(道東里) 교회 목사인 박내영(朴來英)과 교회 영수인 윤기효(尹琪涍)·박문홍(朴文泓)이 찬동하면서 경주의 만세 시위가 처음 계획되었다. 박문홍은 박내영·윤기효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우며 뜻을 함께할 인물들을 포섭하였다. 이때 교회의 청년신도 4, 5인과 함께 포섭 대상에 포함되었다. 3월 11일과 12일 밤 동지들과 함께 경주면 도동리 예배당에 모여 구체적인 거사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하였다. 거사는 다음 날인 13일 경주 큰 장날 군중이 운집할 때를 이용하기로 하였고, 거사에 배포할 태극기는 박문홍의 집에서 제작하여 13일 새벽에 주민들의 집에 배포하면서 거사 장소와 시각을 은밀히 알리기로 하였다. 교회에서는 거사 때 배포할 선언서를 인쇄하여 준비하였다. 박문홍의 집에서 태극기 300여 매와 거사에서 사용할 대형 태극기를 제작하고 이를 각 주민에게 배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활동을 예의 주시하던 경주경찰서의 감시망에 태극기 배포 사실이 탐지되고 말았다. 결국 일본 군경은 거사 당일인 3월 13일 새벽에 4개조로 편성된 기동대를 투입하여 만세 주동자 15명을 체포하고, 박내영 목사와 교회 관계자의 집을 압수 수색하여 거사에 사용할 태극기를 압수하였다. 이렇게 거사를 몇 시간 남겨둔 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3월 13일 장날을 기한 독립 만세 시위도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이로 인해 1919년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후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고, 1942년 6월 1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