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항
金錫恒1861 ~ 1907. 7.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관련 사건
- · 을사오적 암살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1906년 5월 13일자 평리원 「김석항 등 판결선고서」에 46세로 되어 있으므로 1861년 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은 함경도이지만, 의거 당시 거주지는 서울 남서(南署) 후동(後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관, 호 등 구체적인 신상은 미상이며, 가족은 동생 김석하(金錫河)만 확인된다. 정교(鄭喬, 1856~1925)의 술회에 따르면, “천성이 수수하고 정직하며 충성스럽고 성실했다. 나라를 걱정하느라 집을 잊었다. 10년 간 각국을 두루 유람하였고 해외 정세에 밝았다”라고 한다. 1897년 5월 14일에 물품사 주사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5월 24일에 덕릉 봉사, 6월 27일에 순릉 참봉을 거쳐, 1904년 12월 24일 황해도사검위원 등 관직 활동을 하였다. 1905년 8월 유약소(儒約所)를 설립하여 재정 문서를 담당하였고, 9월에는 국권의 쇠약과 민생의 곤란을 보고 대한십삼도 유생 김동필·조세환·현학표·조재명·김두원·송종윤·송석원 등 26명과 함께 각국 공사관에 공함을 보내 일제의 은행, 국고, 차관, 군경, 통신, 철도 등 14가지 정책을 규탄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일제의 보호국화 책동에 맞서 상소운동을 벌이던 전 보안회장 이건석이 1905년 10월 20일 을사늑약 체결 전 다시 상소문을 전하려 비서원으로 가는 도중 대안문(大安門) 앞에서 일본 헌병에게 붙잡혔다. 이때 이문화·유한정·이종대·안한주·이인순·조성찬 등 13명과 함께 연루 혐의를 받아 헌병대사령부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다.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약문에 조인한 다섯 대신을 국권 훼손 ‘매국오적’으로 규정하고 암살하기로 계획하였다. 우선 이종대 집에서 기산도를 만난 후 거사를 행할 이들을 서울 니동(泥洞) 한광국 집에서 머물게 하고 식비를 지급하였다. 또한 이종대으로 하여금 단도 3자루와 권총 1정을 매입하여 거사할 때 휴대하도록 지원하였다. 그 과정에서 오적 제거 후 국권 회복에 대한 좋은 방책이 없어서 고민하였는데, 김일제가 “오적의 부형을 먼저 죽이면 그들의 기세가 꺾일 것”이라고 제안하자 모두 군부대신 이근택 부친 이민승을 제거하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송요철은 3만 냥을 거사 경비로 빌려주었다. 그리하여 11월 23일 밤, 기산도 외 7명은 이민승 처단 거사를 실행하고자 집에 찾아갔으나 실패하였다. 다시 1906년 2월 16일 밤, 기산도·이범석·이근철 3인이 이근택의 집을 습격하여 칼로 10여 군데 중상을 입히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2월 18일 기산도를 비롯한 11명은 일제에 붙잡히고 말았다. 1906년 5월 13일 평리원 재판 결과 동지 김일제와 함께 주모자로서 3년의 징역형을 받았고, 기산도는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나머지도 징역 2년 반에서 2년의 형량이 선고되었다. 선고에 대해 전원 불복하였으나, 손성원이 수감 중 먼저 사망하였고, 나머지는 끝내 8월 15일부터 사역하게 되었다. 혼자만 울화와 이질에다 얼굴·팔 등의 상처로 인해 빈사 상태에 빠져 사역을 하지 않았으나, 숨이 차고 팔 떨림 증세가 심각하였다. 감옥서에서 단발을 명령받았으나 응하지 않자 순검이 구둣발로 걷어차서 왼쪽 팔을 부러뜨렸기 때문이다. 수감자들과 동생이 법부에 누차 억울함을 호소하고 청원했으나 거부당해 끝내 1907년 7월 3일 밤 10시경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시신 윗옷 속에서 나온 유서는 아래와 같다. “오호라. 나는 오늘 죽는다. 늑약부터 그 이후로 의리에 죽은 자 몇 사람이며, 형벌받아 죽음을 당한 자 몇 사람인가? 나 홀로 구차하게 한 오리 목숨을 이어오면서 늘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충성의 부족으로 국권 회복이 불가능하였고 옥중에서 목숨이 다하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아직 눈 감지 못하고 원혼이 떠나지 않아 장차 다시 국권 회복과 난적의 주살을 볼 것이다. 오직 바라건대 우리 동포는 내 죽음을 비통해 하지 말고 한 마음으로 잊지 말고 국권 회복과 난적을 주살하여 우리 동포를 물불 가운데서 구제하라. 그러면 비록 이렇게 원통하게 죽은 쓸모없는 귀신이라도 구천 아래에서 일어나 춤출 것이다. 목숨이 다하여 많이 적지 못하노라” 옥중 유서 내용은 『대한매일신보』에 전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준희⋮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