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
金聖律186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867년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천주면(天柱面) 외두리(外斗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황주군의 만세 시위는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출신의 천도교인 최창룡(崔昌龍)이 독립선언서를 지참하고 천도교 황주교구의 교구장 김성준(金聲駿)을 만난 3월 1일부터 준비되었다. 최창룡에게 서울의 만세 시위 상황과 독립선언서 10매를 전달받은 김성준은 황기타(黃己拕) 등 황주면 천도교의 중심 인물들과 논의를 통해 3월 2일 남천시장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키로 하고, 독립선언서 배포는 황기타가 담당키로 하였다. 또한 황강리(黃崗里)의 김광섭(金光燮)과 최석길(崔錫吉), 성남리의 김병식(金炳植), 벽성리(碧城里)의 조진영(趙鎭永) 등 황주면에 거주하는 천도교의 주요 인물들에게도 만세 시위 계획을 알렸다. 1919년 3월 2일 오후 2시경 황주면(黃州面) 성남리(城南里) 남천시장에는 황주군 전역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모였다. 여기저기 독립선언서가 나붙은 가운데, 군중은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고, 이때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시위대가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경찰서 쪽으로 행진하자 경찰은 시위대를 강제해산시키려 하였고, 선두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던 강형섭(康亨燮)과 김병식이 체포되었다. 시위대는 경찰서 앞에 집결하여 두 사람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경찰이 응하지 않자 시위대는 경찰서에 돌을 던지고, 경찰서 안으로 진입하여 유리창을 부수었으며, 한국인 경찰들에게는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도 하였다. 다시 시위대는 경찰서에서 기독교 예배당 쪽으로 행진하였다. 예배당 앞에 모인 시위대는 독립선언서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는 등 대열을 정돈하였고, 기독교인들이 다수 동참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시위대는 남천시장으로 행진하면서 애국가를 부르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만세 시위를 평화적으로 마무리한 시위대 가운데 천도교인 200여 명은 천도교 황주교구당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였다. 그 사이 경찰은 소방조까지 동원하여 감시와 순찰을 강화하였고, 천도교인들의 가택을 수색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오후 5시경 경찰과 헌병이 천도교 황주교구당에 진입하여, 만세 시위 주동자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천도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였다. 이때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9일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지만,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