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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문

金成文

1891. 1. 13 ~ 1954.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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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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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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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891년 1월 13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읍내면(邑內面) 동리(東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당시 고향에 거주하였고 신발장사(靴商)를 하였다. 경기도 안성군 만세 시위는 3·1운동의 절정기인 3월 말에 본격화되었다. 시작은 늦었지만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안과 함께 3·1운동 ‘3대 항쟁지’로 손꼽힐 정도로 치열하였다. 안성군 읍내면에서는 3월 29일부터 4월 2일까지 크고 작은 만세 시위가 펼쳐졌다. 3월 29일 읍내면 장기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진공필(陳公弼)이 장기리 주민 수십 명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것을 시작으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30일에는 약 300명의 군중이 읍내면 면사무소와 군청 앞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며 관청을 공격하는 등 격렬하게 투쟁하였다. 30일부터 안성시장의 상점은 철시 투쟁에 돌입하였다. 3월 31일에는 약 3,000명의 군중이 안성 읍내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하였고, 4월 1일 오후 9시에는 태극기와 장대에 매단 제등을 앞세운 약 500명의 시위대가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 4월 2일 장기리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주민 수십 명과 함께 참가하여 만세를 외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9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7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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