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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연

金成鍊

1889. 11. 19 ~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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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성연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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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명천(明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명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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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89년 11월 19일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하가면(下加面) 지명동(池明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 이름이 다른 김성연(金成練)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전 11시 하가면의 면 소재지인 화대동(花臺洞) 화대시장에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날 시위는 인접한 길주군(吉州郡) 길성면(吉城面, 이후 길주읍)의 3월 12일 만세 시위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화대시장의 만세 시위에는 5,000여 명이 참여하였는데, 이는 함북에서 전개된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시위대가 ‘독립 만세’를 외치며 화대 헌병분견소 앞으로 행진하자, 헌병들이 발포하여 5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화대시장에서의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동생인 김익련(金益鍊) 및 같은 마을의 김상훈(金相勛)·최우용(崔禹鎔)·현용묵(玄龍默) 등과 모여, 3월 15일 화대시장에서 만세 시위를 다시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만세 시위에 사용할 깃발을 제작하였는데, 깃발은 현용묵이 지참키로 하였다. 3월 15일 화대시장에 1,000여 명이 모이자,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하가면 면사무소로 행진하는 시위대를 주도하였다.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면장 동필한(董弼漢)에게 만세 시위에 동참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김익련·박승룡(朴承龍)·최계락(崔啓洛)·허영준(許英俊) 등과 그를 구타하였다. 이어서 김익련·김재한(金在漢)·최우용·허영준·허현(許鉉) 등과 시위대를 이끌고 화대 헌병분견소 앞으로 행진하였다. 분견소의 헌병들과 길주헌병대에서 파견된 기마 헌병 13명이 시위대에 발포하여 사망자 5명과 11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하였다. 그 과정에서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7월 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1월 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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