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용
金成用187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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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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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4) 1874년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가야면(伽倻面) 설곡리(舌谷里)에서 태어났다. 함안읍의 3·1운동은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한관렬(韓灌烈) 등 함안 지역의 청년 유지들과 함안읍 일원의 유림 및 동명학교 교사들이 주동이 되어 전개되었다. 대산면(代山面)의 한문 교사인 안지호(安知鎬)가 이들의 배후에서 연락을 취하며 활동하였으며, 이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하는 한편, 만세 시위운동 계획을 각지에 알렸다. 3월 19일 정오 비봉산에서 고천제(告天祭)를 지내고 태평루(太平樓)에서 독립선언식을 마친 후 주동 인물들은 봉성동으로 모여들었다. 이 소식을 듣고 함안시장으로 가서,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2시경 3,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과 함께 함안 경찰관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마산(馬山)경찰서장 기타무라(北村)와 일제 경찰이 무력으로 시위 군중을 해산하려고 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도끼, 몽둥이, 돌을 들고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또한 주재소 한인 직원들에게 ‘독립 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응하지 않자 그들을 구타하기도 하였다. 이어 시위 군중은 군청 문을 부수고 들어가, 함안군수 민인호(閔麟鎬)를 붙잡아 ‘독립 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였으며, 등기소·우편소·일본인소학교 등을 차례로 행진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전화가 불통되자 오후 5시 40분경 마산 중포병대대 병력이 출동하여 경찰과 합세하여 주동자 65명을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체포되어 5월 2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마산감옥(부산감옥 마산분감)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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