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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용

金世龍

1901. 10. 10 ~ 1943.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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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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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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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1년 10월 10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광성면(光城面) 외리(外里)에서 김청성(金淸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 관훈동(寬勳洞)에 거주하였다. 미곡상을 하면서 경성공업전문학교 부속 공업전습소 2학년에 재학 중으로 일본조합기독교회인 한성교회(漢城敎會)에 다니고 있었다. 1919년 3월 7·8일 시내에 ‘동포여 일어나라’라는 제목의 격문 배포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3~4일경 동창생 방재룡(方在龍), 일본조합교회인 광남교회(廣南敎會) 전도사 유석우(庾錫祐) 등과 독립 의식 고취를 위하여 더 많은 격문을 배포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3월 6일 방재룡과 함께 방문한 경성고등보통학교 학생 박노영(朴老英)과 독립운동을 확산할 방법으로 격문 제작을 결의한 다음,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으로 만세 시위의 주도자인 한위건(韓偉健)에게 격문의 원고를 부탁하였다. 3월 7일 박노영이 같은 학교 학생 전준희(全俊禧)를 통하여 한위건이 작성한 격문 ‘동포여 일어나라’를 전달받았다. 내용은 민족대표 33인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독립을 쟁취하자는 요지였다. 3월 7일 밤부터 8일 새벽 1시 사이 자신의 집에서 박노영·박수찬(朴秀燦)과 함께 유석우에게 빌린 등사판으로 격문 800매를 인쇄하였다. 박수찬은 3월 8일 밤에 격문 약 250매를 직접 시내에 배포했으며, 방재룡이 소개한 인물에게 250매를 배포하도록 의뢰하였다. 같은 날 경성부 가회동 조홍식(趙弘植)의 집에서 격문 100~200매 가량을 경성공업전문학교 학생 최사열(崔士烈)에게 건네주었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이듬해 2월 27일 기각(미결 구류일수 60일 본형 산입)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1920년 5월 27일 출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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