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
金聲律1920. 4 ~ 1943.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2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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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1)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출신으로 1920년 4월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 경위는 미상이다. 1940년 초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들어가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입대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한 후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 린펀(臨汾), 허베이성(河北省) 스자좡(石家莊) 등 일본군 점령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를 대상으로 한 광복군 병력 모집에 힘섰다. 또 일본군 와해를 위한 선전 및 첩보 공작을 전개하는 한편, 중국 유격대와 협조하여 유격전에도 참전하였다. 1943년 산시성 남부에 있는 타이항산(太行山) 링추안(陵川) 전투에 참여하였다. 링추안은 중국 국민당 제34집단군, 공산당 팔로군 제2종대, 일본군 제36사단 등이 허베이성, 산둥성(山東省), 허난성(河南省) 등 화중(華中)지역을 장악하려고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또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 전지공작대)가 병력 모집, 일본군 정보 수집 등의 공작 활동을 전개한 주요 지역이기도 하였다. 모집한 병력 중 일부는 시안(西安) 전지공작대 본부로 후송되었고, 일부는 남아 중국유격대와 함께 공작 활동과 유격전에 가담하였다. 이후 전지공작대가 광복군 제5지대, 제2지대로 재편되는 과정 중에도 링추안 일대에서의 공작 활동은 계속되었다. 그 해 9월, 링추안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유해는 동지들이 수습하고 있다가 광복 후 귀국하면서 봉안해 왔고, 1967년 서울 수유리의 광복군 합동묘소에 안장되었다. 당시 봉안해 온 광복군 유해 중 유족이 있는 분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18위는 수유리의 광복군 합동묘소에 묻혔다. 현재 묘소는 서울 북한산 순국선열묘역에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여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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