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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종

金世鍾

미상 ~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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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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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慶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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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흥무관학교
  • · 서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족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9)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태생으로 출생 연도는 미상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 서간도(西間島)로 망명하여 펑톈성(奉天省) 류허현(柳河縣)에 있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국내에서 탈출해 나오는 애국청년, 재만 동포 청년, 의병 활동에 참여했던 노년층까지 몰려들면서 신흥무관학교는 개교 이래 최대의 성황을 이루었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서간도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중위(中尉)로 임관되었다. 서로군정서는 1920년 10월경 일제의 침략에 대비하여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안무(安武)의 대한국민회군(大韓國民會軍), 최진동(崔振東)의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이범윤(李範允)의 의군부(義軍府), 서일(徐一)·김좌진(金佐鎭)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 등의 독립군 부대들과 연합하여 백두산 밑 안투현(安圖縣)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이들 독립군 부대의 일부는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일본군과 격전을 치렀는데 이른바 청산리대첩이다. 청산리대첩을 치른 독립군 부대는 미산(密山)을 거쳐 러시아로 들어갔다가 다시 소·만 국경을 넘어왔다. 그리고 1921년 자유시참변을 겪고 많은 독립군이 북만주 지방으로 이동하였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섞여 있다가 자유시참변 즈음 독립군들과 함께 재기를 도모하려 노력했다. 러시아령 이만으로 이동하다가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이동 도중 동사(凍死)하였다. 『동아일보』 1923년 4월 2일자에 순국하던 당시 상황이 자세히 보도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로군정서 중위로서 이만으로 가는 백설로 뒤덮인 삼천오백여 리 길을 홑겹 군복을 입고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행군하였다. 그 과정에서 동상에 걸려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참혹한 모습으로 순국하고 말았다. 목격자에 의하면, 온몸이 아주 빳빳이 얼은 상태였는데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우들우들 떨면서도 대한 독립 만세를 삼창하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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