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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金世元

1870. 6. 2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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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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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강화(江華)미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강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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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5) 1870년 6월 22일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출신지는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남산(南山)이다. 1905년 4월 1,033명의 멕시코 이민자와 함께 한국을 출발하여 5월 멕시코에 도착하였다. 멕시코 유카탄 에네켄 농장에서 4년 간의 노예 노동 끝에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해방되었다. 1909년 5월 국민회(國民會) 산하 멕시코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였다. 1911년 12월 4일 멕시코 타바스코(Tabasco)로 이주하여 신한동지방회(新韓洞地方會)를 설립하여 법무원으로 활동하였다. 1917년 3월 김성용·이학서·김태진·김성국 등과 함께 프론테라 지역으로 이주하여 지방회를 조직하였다. 1918년에 정식으로 프론테라지방회가 결성되면서 회장으로 선출되어 8월 국치 기념 행사를 주관하며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1919년에도 동 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멕시코 각 지역에 파출소를 설치하고 한인들의 인구 등록과 의연금 모집을 실시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서 독립운동을 후원할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었다. 이와 함께 프론테라 파출소 위원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920년 멕시코 한인들은 지속적인 경제난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쿠바는 멕시코보다 돈벌이가 용이하고 생활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는 소문이 겹치면서 1921년 2월 25일부터 3월 3일까지 프론테라와 프로그레소 등 멕시코 각지 거주 한인 274명과 함께 3월 말 마나티 항구에 도착하여 정착하였다. 10월에는 국민회 북미총회에 마나티지방회 설립 청원을 제출하여 승인을 받았으며, 임시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21년에는 정식 회장으로 선출되어 3·1운동 기념식을 주관하며 한인들과 함께 독립 의식을 강화하였다. 1921년 박창운과 함께 마나티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마탄사스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지방회 설립에 노력을 기울였으며, 1922년에는 마탄사스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23년 2월 1일 대한인국민회 창립 14주년을 맞이하여 이세창과 함께 국민회 역사에 대해 진술하면서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1923년에는 지방회 재정조사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24년 카르데나스지방회에서 학무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인 2세들에게 민족 정체성과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데에 앞장섰다. 1925년에는 카르데나스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26~1928년까지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지방회를 운영하였다. 1929년에는 다시 회장으로 선출되어 쿠바 지역 한인들의 생활 안정과 국외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활동을 하였다. 1930년, 1931년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 지역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11월 14일에는 이봉창 의사의 추도식, 1934년에는 대의원으로서 순국의사의 추도식을 거행하여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강화하였다. 1935년부터 1942년까지 카르데나스지방회에서 각종 기념식 등을 거행하면서 ‘우리의 장래’, ‘국치 약사’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1917년부터 1927년까지 국민의무금, 독립의연금, 애국동맹단 의연금 등 37여 원을 독립운동자금으로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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