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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두영

姜斗永

1898. 7. 19 ~ 196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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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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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驪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여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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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북내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8년 7월 19일 경기도 여주군(驪州郡) 북내면(北內面) 오금리(五今里)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 전국으로 파급되고 있는 가운데 여주군 북내면 장암리(長岩里)에 거주하던 경성농림학교(京城農業學校) 학생 원필희(元弼喜)와 이원기(李元基)·이원문(李元文)·조경호(趙經鎬) 등은 여주군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학생들이 주도하는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1919년 4월 3일 최영무(崔永武)·원필희 등과 함께 북내면 당우리(堂隅里)의 만세 시위에 앞장섰다. 이날 만세 시위를 결의하여 현암리(峴岩里)·장암리(長岩里)·덕산리(德山里)·와룡리(臥龍里) 등 인근 마을을 다니면서 주민들의 참여를 요청하였고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배포하였다. 여기에 호응한 800여 명의 주민과 함께 당우리 공북학교(拱北學校)에 모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런 다음 최영무가 태극기를 떠받들고 선두에 서서 시위 군중을 인솔하고, 이원기·원필희 등과 함께 시위 군중을 독려하여 오학리(五鶴里)까지 행진하며 만세 시위를 펼쳤다. 적극적으로 당우리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결국 경찰의 진압으로 시위 군중이 해산되면서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동년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0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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