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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근

金松根

1901. 9. 16 ~ 1957.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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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송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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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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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901년 9월 16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하상면(下廂面) 동리(東里, 현 울산광역시 중구 동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소석(素石)이다. 성장 과정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병영청년회에서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울산군 하상면 병영 지역(현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동)에서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은 서울에서 유학하다가 귀향한 병영청년회원들이 서울의 3·1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해옴으로써 계획되었다. 울산 병영의 사립 일신학교(日新學校) 출신 청년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병영청년회 간부와 회원들이 뜻을 모은 다음 4월 4일을 거사 일로 정하였다. 주동 인물들은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종이와 명주에 ‘대한국 독립 만세’라고 크게 쓴 깃발을 만드는 등 준비를 하였다. 4월 4일 같이 활동하던 병영청년회원들을 비롯하여 일신학교 학생들과 함께 일신학교 교정에 집결하여, 오전 11시 40분경 축구경기로 위장한 다음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가 인근 마을을 돌자 주민들이 호응하여 시위 군중이 수백 명으로 늘어났으나, 일본군 수비대의 진압으로 주동 인물들이 체포되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튿날인 4월 5일 체포를 피한 청년 회원들과 함께 다시 일신학교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1,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와 함께 일본군 주재소로 행진하여 전날 체포된 주민들의 석방을 촉구하였다. 이때 울산에서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의 무차별 사격에 4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입었다. 이틀에 걸쳐 전개된 병영의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윤학이(尹學伊)·백봉근(白鳳根) 등과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군경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2일 울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 처분을 받았다. 이때 체포되었다가 출옥한 인사들이 중심이 된 ‘울산병영삼일사봉제회’는 4월 5일 중구 서동 황방산에서 순국열사 위령제를 지내고, 4월 6일에는 3·1사(祠)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있다. 3·1사에는 순국열사 4명과 함께, 그를 포함한 애국지사 22명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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