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탁
金世鐸1874. 3. 3 ~ 1920. 9.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한족회(韓族會)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 · 경신참변(庚申慘變)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본명은 김봉수(金鳳洙)이다. 중국으로 망명 후 김세탁(金世鐸)으로 개명하였다.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납청정(納淸亭) 출신으로 어려서 한문은 배웠으며 기독교(장로회) 신자였다. 1910년대 정주군 마산면에서 음식점과 잡화상을 운영하던 중 105인사건 피의자로 구속되었다. 105인사건은 1911년 일제가 무단통치의 일환으로 기존의 신민회 조직을 와해시켜 민족운동을 탄압하고자 조작 날조하여 최후로 105명의 애국 지사를 투옥한 ‘데라우치총독모살미수사건’(寺內總督謀殺未遂事件)을 말한다. 혐의 내용은 ‘신민회 회원으로 학생, 청년들에게 독립 정신을 고취하고 간도 지역에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독립전쟁을 준비하던 중 국권을 상실하자, 이에 분개하여 총독암살모의에 가담했다’라는 것이었다. 1911년 10월경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경무총감부 산하 용산 헌병경찰서에 구금되어 날조된 혐의 내용을 자백하도록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1912년 6월 28일 경성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으며 공개된 재판에서 경무총감부와 검사정에서 진술한 내용은 고문에 의한 허위진술이었다고 항의했으나 1912년 9월 28일 1심 선고공판에서 123명 기소자 가운데 105인의 한 명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오대영(吳大泳)·옥성빈(玉成彬)·길진형(吉鎭亨, 1891~1916)·안세환(安世桓, 1892~1917)·강봉우(姜鳳羽, 1892~1970)·양준희(梁濬熙) 등 42명과 함께 5년 형 선고를 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 사건을 조작 날조한 일제 당국에 따르면 신민회 평안북도 산하 정주납청정 반장 이용화(李溶華) 산하에서 탁창호(卓昌浩)·김선행(金善行)·김용오(金龍五)·조덕찬(趙德燦, 1868~?)·김찬오(金燦五) 등 20여 명과 함께 납청정 지역 신민회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별반 보이지 않는다.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며, 1913년 3월 경성복심법원 2심 공판에서 105인사건 주모자로 지목된 윤치호(尹致昊, 1865~1945)·양기탁(梁起鐸, 1871.4.2~1938.4.19)·임치정(林蚩正, 1880.9.26~1932.1.9)·이승훈(李昇薰, 1864.3.25~1930.5.9)·안태국(安泰國, ?~1920)·유동열(柳東悅, 1880.3.26~1950.10.18) 6인을 제외한 99인이 풀려날 때 함께 석방되었다. 출옥 후 1914년 중국 간도 지역으로 망명하였다. 1914년 12월 간도 류허현(柳河顯) 삼원포(三源浦)에 은양중학교(恩養中學校)를 설립하였다. 이 지역에 1911년 먼저 세워진 신흥무관학교 운영에 참여했으며 1916년부터는 독립운동단체인 공리회(公理會)를 조직하기도 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직후 만주 일대 한인 독립운동 단체들이 부민단(扶民團)을 개편하여 조직한 한족회(韓族會)에 참여하여 구정(區正)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경신참변(庚申慘變) 때 루허현 삼원포에서 습격을 받아 동년 10월 23일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윤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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