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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일

金宋一

185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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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송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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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노인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1851년경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22년경 서간도(西間島) 콴뎬현(寬甸縣)에 거주하였다. 1922년 하반기 콴뎬현 다징거우(大井溝)에서 대한독립노인단(大韓獨立老人團)을 조직하고 부단장에 선임되었다. 단장은 두 살 아래인 70세의 이지봉(李枝奉)이었고, 단원은 50세 이상 노인들이었다. 이 단체의 설립 목적은 콴뎬현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1인당 30전씩을 징수하여 독립군단(獨立軍團)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노인들로 구성된 독립운동 단체로는 1919년 3월 소련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대한국민노인동맹단(大韓國民老人同盟團)이란 단체도 있었다. 노인동맹단의 단원 이승교(李承橋, 이명 이발(李發), 당시 71세)·윤여옥(尹余玉, 당시 59세)·정치윤(鄭致允, 당시 75세) 등은 1919년 5월 서울로 파견돼 종로의 보신각 앞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또 단원 강우규(姜宇奎, 당시 65세)는 같은 해 9월 남대문역(현 서울역)광장에서 새로 부임하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실행하였다. 이같이 국내로 진입해 독립 만세 운동과 무장 활동을 실천한 노인동맹단과는 달리 노인단은 오직 군자금을 수합해 항일 독립전쟁을 전개하는 독립군단에 제공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였다. 모집한 군자금을 노인단이 가장 많이 제공한 독립군단은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이었다. 류허현(柳河縣)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단은 지안(輯安)·환런(桓仁)·싱징(興京)·번시후(本溪湖) 등 남만주(南滿洲) 여러 지역에 지단(支團)을 설치하였고, 콴뎬현에도 2개의 지단과 2개의 총관(總管)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노인단 단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기도 했지만, 의병 출신들이 주도해 설립한 대한독립단이었기에 지휘부의 연령이 노인단과 거의 차이 나지 않아 이념적으로도 통했기 때문이다. 대한독립단과의 관계가 한층 긴밀해지자 노인단은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위해 콴뎬현에 대한독립단 참모부(參謀部)까지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참모부의 설립 여부와 활동 사항에 대해서는 자료의 한계로 밝히기 어렵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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