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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담

金壽聃

1852 ~ 189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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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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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義城)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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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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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근수(謹叟)이다. 1852년 경상북도(慶尙北道)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서변리(西邊里) 사촌(沙村)에서 아버지 김헌유(金憲裕)와 어머니 한산 이씨(韓山李氏) 사이에 태어났다. 가학으로 학문을 익혔다. 1896년 3월 창의한 의성 의병부대 의병장 김상종(金象鍾)의 족숙(族叔)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의성 지역은 주변 지역보다 늦게 1896년 3월 3일 향교에서 창의 통문을 돌렸고, 3월 14일 향회에서 점곡면 사촌 출신 김상종을 창의장으로 천거하였다. 3월 25일 김상종이 의병장에 취임하고 의병부대를 편성하였다. 의병부대 지도부는 의병장 김상종 아래, 중군장(中軍將), 선봉장(先鋒將), 우익장(右翼將), 소모장(召募將), 관향장(管餉將) 등 5부로 편성되었는데, 이때 선봉장에 선임되었다. 지휘부는 대개 의성 점곡 사촌마을 유생들로서 김상종의 혈연(血緣) 또는 지연(地緣) 관계의 인사들이었다. 병사부는 농민들과 포수들로 구성되었다. 김상종이 대지주였던 만큼 소작농이 많이 참여한 것 같다. 1896년 4월 1일 무기를 준비하며 훈련을 하기에는 부족한 기간이었지만 출진하여 의성읍 남쪽 구성산(九成山), 즉 구봉산(九峰山)에 진을 쳤다. 곧 대구지방대(大邱地方隊)가 북상한다는 정보를 듣고 이에 대비하였다. 대구 관군은 경북 함창(咸昌) 태봉(泰封)의 일본군 병참대를 공격하려고 결성된 경북 북부 지역의 연합 의병부대를 공격하려고 북상하던 중이었다. 4월 2일 의병부대는 이를 저지하고자 구성산에서 접전을 벌였다. 대장 김상종의 진두 지휘로 오전 5시경부터 오후 1시경까지 약 8시간 동안 격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병사들이었지만 큰 피해 없이 관군 2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소식을 들은 호좌 의병부대 서상열(徐相烈)이 칭송과 축하의 글을 보내왔다. 하지만 후퇴하던 관군들에 의해 의성 읍내 민가 800호 중 700호가 불타는 화를 입었다. 구성산전투 후 전열을 정비하고 같은 해 4월 11일 의성 옥산면(玉山面) 황산(黃山)에 들어가 진을 쳤다. 이어 4월 16일 안동(安東) 길안면(吉安面) 용담사(龍潭寺)로 진을 옮겼다가 4월 21일 다시 황산으로 돌아와 주둔하였다. 5월 10일 대구 관군 50명과 군위 관군 100명 등 대규모 관군이 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 옥산면 금학리(金鶴里) 고무실(鈷鉧谷)로 진을 옮기려고 선발대를 파견하고 대기하였다. 5월 10일 밤 관군의 급습을 받고 이튿날까지 접전을 벌였다. 이것이 황산전투이다. 저녁부터 큰 비가 내려 화약은 진흙이 되고 옷과 장비가 젖어 못쓰게 되었다. 관군은 이 틈을 타 맹공격을 퍼부었고, 의병부대는 이에 대적하면서 버티었다. 이 전투에서 관향장 김수협 등 장졸 20여 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 당시 황산 중턱에 안장되었다가, 1997년 10월 17일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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