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동
金壽童1885 ~ 1910. 12.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강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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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1885년경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 연월일은 알 수 없으나 1907년 9월부터 이강년(李康年)·최성천(崔聖天)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전개한 의병 활동으로 1910년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당시 판결문에 26세로 기재된 것을 볼 때, 188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재판 당시 주소는 충북 영춘군(永春郡) 동면(東面) 수발리(水發里)였다. 이강년은 경상북도 문경 출신으로 1895년 의병 운동에 뛰어들었다. 1896년 유인석(柳麟錫)이 이끌던 제천의병에 합류하여 호좌 의병부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훗날 관군의 공세에 밀려 제천의병이 근거지인 제천을 내어 주게 될 때까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 활약하다가 유인석이 중국 요동 지역으로 가자, 의병을 해산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907년 다시 의병을 일으켜 충주·제천 등지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이 해 12월 전국의 의병들이 서울을 공격하려고 각도 의병장을 따라 양주에 집결해 13도 연합 의병부대를 편성하자, 호서창의대장으로 참여하였다. 이강년 의병부대에서 1907년 9월부터 1907년 11월 26일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기간 의병 200여 명과 함께 경북 문경, 충청북도 단양·영춘, 강원도 영월군 내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전투를 벌이고 일진회원 및 친일관료를 처단하였으며, 의병 활동에 필요한 군수품을 조달하였다. 1908년 6월 이강년이 일본군에 검거되자 그의 부장들은 저마다의 의병을 거느리고 각기 활동하였다. 김상태는 영월에서, 성익현은 삼척에서, 변학기는 영양·울진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상태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최성천은 이후 의병장이 되어 경북 예천·봉화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가열되자 최성천은 산악지대를 근거지로 하는 소부대 유격전으로 일본군에 맞서기 위해 소백산으로 들어가 활동하였다. 1909년 (음)9월경 소백산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던 최성천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1910년 6월 6일에 경북 영천군 두내면(豆內面) 반구(盤邱)시장 부근에서 영천군 봉향면(奉香面) 상망동(上望洞)에 사는 정갑이(鄭甲伊)와 상주군에 사는 정인수(鄭寅守)가 순사와 밀정이라는 것을 알고 최성천의 명령에 따라 동료 의병 5명과 함께 그들을 결박하고 영천군 호문면(好文面) 화기동(花岐洞) 지내(地內) 반구천(盤邱川) 제방으로 끌고 가 처단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에 붙잡혀 1910년 10월 7일에 대구지방재판소 형사부에서 이른바 강도 및 살인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10년 11월 15일 대구공소원 형사부에서 기각되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1910년 12월 3일에 고등법원 형사부에서도 항소가 기각되었다. 이에 형이 확정되어 12월 23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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