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강명수

姜明秀

1887. 6. 30 ~ 1925. 1. 1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명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산청(山淸)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산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신등면 만세세위
  • · 단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87년 6월 30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입석리(立石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1919년 3월 20일의 신등면(新等面) 단계리(丹溪里) 시장 시위는 유학자로 추앙받던 김영숙(金永淑)과 그의 제자 정태윤(鄭泰侖) 등이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3월 19일로 예정한 첫 시위가 무산된 이후 3월 20일 장날을 기해 다시 의거하였다. 오후 2시경 단계리 시장에는 600~700명의 군중이 모였는데, 대형 태극기를 앞세운 김영숙 등의 지도에 따라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고 단성면 성내리(城內里) 시장까지 행진하였다. 단성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출동해 발포하는 등 무력으로 진압했으나 밤이 깊도록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튿날인 21일에는 단성면 성내리 시장에서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이 두 차례의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8월 14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진주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출옥하였으나 1925년 1월 1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