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사
金修史1912. 2. 11 ~ 1984. 10. 2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민족혁명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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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2년 2월 11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청주읍(淸州邑) 석교정(石橋町)에서 출생하였다.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한 뒤 상하이 프랑스조계(佛租界) 환용로(環龍路)에 거주하며 김진원(金鎭源)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과 1932년 상하이사변(上海事變) 후 독립운동 세력의 역량 결집을 위한 정당 통합 운동이 추진되었다. 1935년 난징(南京)에서 민족통일전선의 원칙에 따라 신한독립당(新韓獨立黨)·의열단(義烈團)·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대한독립당(大韓獨立黨) 등 5당이 통합하여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을 조직하였다. 1936년 2월 초 민족혁명당 민족혁명당 본부 군사부원에 임명된 장낙수(張洛洙)는 군사부장 이청천(李靑天)으로부터 상하이에서 제2기 특별정치훈련반에 입소시킬 학생 등 당원 모집과 상하이구당부(上海區黨部) 조직을 명령받았다. 장낙수는 당원 이종환(李鍾煥)·추원규(秋元圭)와 함께 상하이에 잠입해 군관학교에 입학할 학생 모집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때 장낙수를 만나 민족혁명당에 입당시킬 청년들을 알선하였다. 5월 초순 프랑스조계 시아이씨엔쓰로(西愛咸斯路) 박진방(朴震方)을 소개받아 장낙수에게 입당 알선을 의뢰하고, 이를 승낙받은 후 민족혁명당 중앙부와 연락해 입당시켰다. 1937년 장낙수가 당원 모집 활동 중 붙잡혀 일본 나가사키지방재판소(長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장낙수에게 입당 알선을 부탁하는 등의 정황이 드러나면서 붙잡혀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1939년 다시 상하이로 건너간 후 충칭(重慶)에서 활동하다 광복을 맞았다. 충칭에서 귀환해 주중특파대사(駐中特派大使) 정환범(鄭桓範)의 비서로 근무하였다. 1984년 10월 22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사망하였고 유해는 국립 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양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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