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81 ~ 1924. 3.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평양형무소 옥살(獄殺)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출생 연월일은 분명하지 않다. 1924년 활동 당시 44세였으므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 보림면(寶林面) 간성리(肝城里)이다. 절도죄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平壤刑務所)에서 복역하던 중 3·1운동 기념 투쟁에 가담하였다. 3·1운동은 거국적 민족운동으로 매년 각계각층이 독립정신을 이어가고자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 투쟁을 벌였다. 국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 이후 매년 3·1절 기념식을 거행하여 만세 운동의 정신을 기억하며 항일 투쟁의 결의를 다졌고, 국내에서도 역시 여러 사회운동 단체가 기념식을 진행하였다. 평양형무소에서 진행된 3·1운동 기념 투쟁은 일제 경찰과 대면하고 있는 가장 취약한 공간에서 진행되었다는 측면에서 더 의미가 있다. 평양형무소에서는 1924년 3월 1일 오전 8시경 복역 중이던 정치범 최명현의 주도로 3·1운동 기념 행사가 진행되었다. 평양형무소에는 200여 명의 수형인이 수용되어 있었고 기결수가 작업하는 6개 공장에서 전등불을 밝히면 동시다발로 세 번씩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계획하였다. 모든 수형인은 일치단결하여 오후 6시 반경 주도자의 선창에 따라 2, 3차례씩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에 형무소 헌병대는 즉시 출동하여 만세 부른 죄수와 혐의자를 중앙 사무실에 몰아넣은 후 결박하여 끌고 다니며 밤늦도록 폭력을 휘둘렀다. 이러한 폭력에 저항하여 정치범은 물론 같은 형무소에 있던 잡범들까지 단식투쟁에 돌입하였다. 이 만세삼창과 단식 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단식투쟁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동료 8명과 함께 혹독한 형벌을 당하였다. 단식에 돌입한 다음 날부터 이른 아침에 불려 나와 헌병대가 옷을 전부 벗긴 후 냉수를 끼얹고 강제로 먹이는 등 악형을 당하고 독방에 갇혔다. 침구도 없이 추위를 견디면서도 형무소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악형을 겪다가 계속되는 고문을 견디지 못해 1924년 3월 7일 옥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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