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훈
金淑壎1890. 9. 5 ~ 1953. 6.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희천군 관동청년친목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희천청년친목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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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5) 1890년 9월 5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갈산면(葛山面) 익성리(益城里)에서 출생했다. 1921년에는 평북 희천(熙川) 장동(長洞)에서 거주하였다. 1920년 6월 22일 같은 동리 청년 최윤서(崔允瑞)·김창훈(金暢壎)·김석철(金錫喆)·김지훈(金持壎) 등과 함께 희천군 장동면 관동에서 독립사상을 선전하고 ‘한국 독립 운동’을 원조하려고 청년친목회를 조직하였다. 청년친목회에서 회장을 맡았고, 최윤서는 지육부장(智育部長), 김석철은 평의원(評議員), 김양훈은 회계 겸 서기, 김지훈은 고문을 각각 담당하였다. 4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고 매주 목요일마다 회원 일동이 삼락학교(三樂學校)에서 모임을 갖고 시국을 논하였다. 일제의 탄압을 의식하여 표면적으로는 지식의 계발과 회원의 친목을 표방하였지만 비밀히 회합하며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였다. 청년친목회 모임에서 우리가 조국을 위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우리 청년의 책임이니 이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란 내용의 연설을 하였다. 또한 이러한 의미의 「창가」를 불러서 독립사상을 선전하였다. 그러나 청년친목회가 “독립사상을 선전, 치안을 방해했다”라는 혐의로 모두 체포되어 1921년 4월 21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에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기각되어 1921년 6월 22일 징역 1년 형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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