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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주

金時州

1921. 9. 19 ~ 1968.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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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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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昌原)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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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마산공립상업학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1년 9월 19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웅남면(熊南面) 귀현리(貴峴里)에서 농사를 짓던 김병준의 아들로 태어났다. 창씨명은 금전시주(金田時州)이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거쳐 1935년 4월 6일 마산공립상업학교(馬山公立商業學校)에 입학하여 1938년 3월 3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매형 김규형(金奎炯)의 소개로 웅천금융조합과 밀양의 수산금융조합(守山金融組合)에 취직하였으나, 1940년 1월경 사임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고자 만주로 이주하여 선양(瀋陽), 하얼빈 등지에서 항일운동에 가담하였다. 같은 해 12월 귀국하여 마산·창원·진해 등지에서 청년들에게 신사참배(神社參拜) 거부를 호소하는 전단과 항일선전물 등을 배포하다가 1942년 8월경 진해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경남도경으로 이송되어 신문을 받고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1944년 8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 일수 200일 포함) 형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일제의 패망으로 1945년 8월 18일 형집행 정지로 출옥하였다. 광복 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으나, 감옥에서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고생하다가 1968년 12월 15일 진해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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