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복
金時福미상 ~ 1908. 6. 26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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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5) 정확한 출생 연월일과 출신지는 알 수 없다. 1908년 평안북도 강계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7년 의병 전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광무황제(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군의 강제해산이 그 원인이었다. 대한제국군은 일제에 항거하여 대거 의병에 가담했고, 이는 곧 의병부대의 전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 김원희(金元希)·정수암(鄭洙岩)·백원보(白元保) 등과 함께 평북 강계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후기 의병은 1908년 1월부터 의병 활동이나 그 규모면에서 계속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추세 속에서 6월과 7월 감소의 폭이 특히 큰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일제가 1908년 6월 15일에서 7월 10일까지 북부 지역 의병을 ‘소탕’할 목적으로 시행한 이른바 ‘북부수비구대토벌작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전을 통해 의병 585명이 전사하고 202명이 검거되어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일제의 조직적 탄압으로 다수의 의병들과 의병부대는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이런 상황을 맞아 1908년 6월 26일 도마령에서 강계수비대·경찰대·헌병대에서 파견된 토벌대와 교전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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