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복
金時福188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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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85년경 전라북도 익산(益山)에서 태어났다. 1910년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재판 받을 당시 판결문에 26세로 기재된 것을 볼 때, 1885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주소는 전북 익산군 남일면(南一面) 용자포(龍子浦)였다. 1907년 대한제국군의 강제해산과 고종황제의 퇴위로 인해 의병 전쟁이 일어났다. 호남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기 의병 시기 호남의병은 전국 의병을 대표했다고 할 정도로 격렬하였다. 그 결과 일제의 탄압도 가장 강렬했으며 희생자도 많이 발생하였다. 일본군은 호남의병의 항쟁이 격화되고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1909년 9월 1일부터 약 2개월에 걸쳐 호남의병에 대한 대학살작전을 수행하였다. 이 군사작전은 한국임시파견대의 전 병력을 호남 지역의 의병 진압에 투입하여 의병을 박멸한다는 계획이었다. 호남의병은 일제가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라고 부른 대학살 작전에 의해 40여 일 만에 붕괴되고 말았다. 이 같은 시기에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1910년 (음)2월 24일 박영오(朴永五) 등 4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전북 고산군 서면(西面) 내월곡리(內月谷里) 송병린(宋秉麟)의 집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였다. 1910년 3월 이수암 등과 함께 전북 임피군 남이면 신암리 강성재의 집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고, 같은 해 4월 7일에는 전북 김제군 공동면(公洞面) 난산리(卵山里)에 거주하는 일본인 사에키 분타로佐伯文太郞의 집을 습격하여 총기와 탄약을 노획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 붙잡혀 1910년 12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겪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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