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곤
金順坤1912. 2. 12 ~ 1966. 9.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 · 의열단
- · 민족혁명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1937년 상하이 일본총영사관폭파계획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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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1912년 2월 12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강동면(江東面) 신명리(新明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장경지(張敬之), 김봉일(金奉日), 장문화(張文華), 임로수(林路樹), 양엽(楊葉) 등을 사용하였다. 16세 되는 해 봄 울산공립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중동학교에 입학하였으나 3학년 때 중퇴하였다. 1932년 4월 울산군의 산림보호원(山林保護員)으로 취직하였다. 다음해 울산군청 축산회(畜産會) 재비돈사육(裁肥豚飼育) 지도원으로 근무하다가 같은 해 6월 사직하였다. 1934년 5월 지린성(吉林省) 펑톈(奉天)으로 건너가 조선인민회에서 경영하는 제승업(製繩業) 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학업을 위해 난징(南京)으로 가면서 의열단(義烈團)과 연결되었다. 난징성 내의 의열단간부학교훈련소에 입소했다가 1935년 장쑤성(江蘇省) 황룡산에 있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에 3기생으로 입교해 정치군사훈련을 받았다. 같은 해 6월 5일 의열단에 정식으로 입단하였고, 7월 민족혁명당에 입당하였다. 같은 해 9월 30일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생 과정을 졸업하였다. 1936년 7월 초순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으로부터 일본군 동향에 관한 정보 수집, 여성 동지 획득, 정치 정세 보고와 함께 폭탄 투척을 통해 치안을 교란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상하이(上海)에 파견되었다. 이후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11기 공병대(工兵隊)에 재학 중인 김병화(金炳華)와 함께 프랑스조계 환룡로(環龍路) 러시아인 집에 비밀 폭탄제조소를 설치하였다. 중산대학생 김파(金波), 정린(鄭麟) 및 중국인 정졔푸(鄭杰夫) 등과 연계하여 8월 17·18일 상하이 소재 일본 총영사관 등 여러 곳에 폭탄을 투척키로 계획하였다. 같은 해 8월 14일 폭탄 두 개에 화약 장전을 끝내고 나머지 한 개에 화약을 장전하던 중 폭탄이 터져 김병화는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자신은 중상을 입고 일제에 체포되어 11월 7일 국내로 호송되었다. 1937년 1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다가 1941년 2월 풀려났다. 이후 매일신문 편집국장, 부산일보 편집국장, 동양통신 사장 등을 지냈다. 1966년 9월 10일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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