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여석

金汝錫

1893. 12. 6 ~ 1961. 1. 1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여석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제주(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제주 격문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1893년 12월 6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구우면(舊右面, 한림읍과 한경면을 통틀어 부르는 옛 지명) 낙천리(樂泉里)에서 태어났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1891년에 태어났다고도 한다. 호는 오학(梧學)이다. 이명으로 김여영(金汝暎)이 있다. 1919년 당시 서당 훈장이었다. 1919년 전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는 가운데 제주에서도 3월 21일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를 중심으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에 동조하여 고향인 구우면을 중심으로 주변의 마을 훈장들과 함께 서당 생도들을 모아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저지리(楮旨里)의 서당 훈장이던 박세현(朴世賢)과 낙천리의 조무빈(趙武彬), 신좌면 신촌리(新村里)의 신계선(愼啓善)과 시위를 일으킬 것을 합의하고, 함께 연계하여 격문을 작성하였다. 그러나 거사에 앞서 고사(告祀)를 지내고 격문을 붙이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10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도수규칙(屠獸規則)’ 위반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