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추
金時秋1901. 10. 25 ~ 1945. 12. 1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청년총동맹 제주청년동맹 조천지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0)
관련 사건
- · 조천금주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0) 1901년 10월 25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신좌면(新左面, 현 조천읍)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그의 집안은 김명식(金明植)·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김시곤(金時坤)·김시용(金時容)·김시황(金時黃) 등 직계 8촌의 형제지간 다수가 조천의 3·1운동 등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가문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제주의 여러 사회운동 방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8년경 김순탁(金淳鐸) 등과 함께 조천리에서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제주청년동맹 조천지부를 조직하여 위원대표를 맡아 활동하였다. 조천지부의 맹원들은 한국인의 계몽을 위해 신좌문고(新左文庫)를 운영하고 노동야학을 개설하는 등 계몽 활동에 주력하였다. 또한 조천의 금주운동(禁酒運動)에도 앞장서서 밀주(密酒)를 금지시키는 등 활발히 활동하였다. 조천 금주 활동으로 인해 1928년 말 일제 경찰에 붙잡혀 12월 14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이른바 주거침입, 업무방해, 폭력취체령(暴力取締令) 위반으로 맹원 윤성종(尹性鍾)·김성환(金聖煥)과 함께 벌금 20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사가 경형(輕刑)이라고 항소하여 1929년 2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벌금 50원을 선고받았다. 1929년 8월 개최 예정이었던 제주청년동맹 조천지부 제1회 정기총회 준비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이 정기총회에서 부녀자 노동야학 조직을 결정하고, 김유환(金瑬煥)·김서호(金瑞鎬)·김중원(金重遠) 등과 함께 여성을 대상으로 문맹퇴치와 민족의식 고취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회 대회 개최 후 조천지부 위원대표로서 제2회 정기대회를 열고자 여러 차례 일제 당국에 교섭하였으나 끝내 금지당하였다. 같은 해 말에는 노동야학을 개설하여 청소년에게 한글·일본어·산수 등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30년 2월 14일 조천의 신좌문고(新左文庫)를 비롯하여 함께 활동하던 김순탁·김유환·김창환(金昌煥)·이재원(李裁圓)·김서호·김중원·김민화(金玟華)·윤용석(尹龍錫)·김시우(金時祐) 등 동지들과 자신의 집이 모두 가택수색을 당하고 다수의 서적과 서류를 압수당하였다. 그 결과 집행위원장이었던 김순탁을 비롯해 김유환·김서호·김중원 등의 동지 및 야학에 참여하였던 여학생 5인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취조를 받고 곧바로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0년 4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서 10개월여 동안 옥살이한 후 그해 12월 24일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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