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야운
金野雲미상 ~ 1931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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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출생 시기 및 출신지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1929년 7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닝안현(寧安縣)에서 김좌진의 신민부(新民府) 군정파와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이 연합하여 결성한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에 참여하여 북만주 지역에서의 농촌 자치 조직의 건설과 교육 활동을 통한 독립운동 역량의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한족총연합회는 북만 지역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공산 진영의 도전에 대응하면서 민족 진영의 항일 투쟁 역량을 새롭게 강화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던 김좌진(金佐鎭)이 윈난군관학교(雲南軍官學校)를 졸업하고 자신을 찾아온 족제(族弟) 김종진(金宗鎭)과 그의 동지 이을규(李乙奎) 등으로부터 무정부주의 사상을 수용하면서 결성되었다. 이후 조직이 결성되자 김종진(조직·선전·농무부위원장)·이붕해(李鵬海, 군사부위원장)·이을규(교육부위원장) 등과 함께 교육부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달(李達)·김야봉(金野蓬)·이덕재(李德載)·엄형순(嚴亨淳) 등도 그와 함께하였다. 1929년 10월에는 신민부 구역 내의 해림소학교(海林小學校)에서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이 조직되자 이에 가담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는 무지배의 사회를 구현할 것과 상호부조적인 자유로운 합작으로 각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기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조직 내에는 만주 지역에서의 무정부주의운동을 강화하고자 했던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의 이을규를 비롯하여 정현섭(鄭賢燮)·백정기(白貞基)·이강훈(李康勳) 등도 참여하고 있었다. 1929년 12월에는 북만민립중학기성회(北滿民立中學期成會)의 상임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특히 구강포학교(九江包學校)의 교무를 전담하였다. 한족총연합회 내에는 50여 개의 소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신민부 시절부터 운영되어온 것이기는 했지만, 구강포학교와 보신학교(保新學校)·동신학교(東新學校) 등은 한족총연합회가 직접 설립 운영한 학교들이었다. 또한 50여 개의 소학교에서 졸업생이 배출되는 상황에서 더 수준 높은 중학 과정의 교육이 절실한 추세였고, 이에 대한 한인 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자 실제로 교육 현장을 이끌던 사람으로서 중학교 설립을 위한 계획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0년 3월 3일에는 북만 지역 한인공산주의자들의 도전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신한농민당(新韓農民黨)이 결성되었다. 신한농민당에 참여하였다. 재만조선무정부의자연맹이 결성 과정에 재만 동포의 항일 반공사상 계몽 및 생활 혁신에 헌신한다는 행동 강령을 채택한 상황에서 참여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이밖에 1930년 1월 김좌진이 사망한 후에는 한족총연합회의 혼란을 수습하고자 노력하였다. 즉, 김좌진 사망 이후 한족총연합회의 주도 인물들은 1931년 2월 4일 지방위원들을 중심으로 한 회의를 개최하고 종래에 문제가 되었던 간부를 모두 배제한 상태에서 새로운 농민 단체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는 한족총연합회의 지방조직이었던 농무협회(農務協會)를 지방농무회로 고치고 이들을 연합한다는 의미에서 한족농무연합회(韓族農務聯合會)로 하는 조직의 설립으로 추진되었으며, 대체로 강운산(姜雲山)·윤일산(尹一山)·김광렬(金光烈) 등이 중요 간부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족농무연합회가 조직되는 과정에서 그 산하의 민우당(民友黨)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이는 농민조직을 중심으로 한 보다 조직화된 무정부주의 단체를 결성하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같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북만 지역에서 무정부주의 세력과 한인 공산주의자들의 갈등이 격화되고 민족 진영 내부의 알력도 표면화되는 과정에서 1931년경 이백호(李白虎)·이익화(李益和)·박태춘(朴泰春) 등에 의해 피살 순국하였다. 한편, 광복 직후 국내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이 결성한 자유사회건설자연맹과 조선농촌자치연맹중앙연합회 민우회에서는 1945년 12월 22일 오후 1시 서울 수송동 태고사에서 국내외에서 혁명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동지들에 대한 추도회를 개최하였는데 이회영(李會英)·신채호(申采浩)·백정기 등과 함께 23명의 명단 속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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