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갑
金順甲1885. 4. 10 ~ 1967. 5.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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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2) 1885년 4월 10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현 양주시) 장흥면(長興面) 울대리(鬱垈里)에서 태어났다. 향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양주군의 1919년 만세 시위는 3월 14일 진접면(榛接面, 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長峴里), 한금면(漢金面) 금곡(金谷, 현 남양주시 금곡동)으로부터 시작해 3월 15일 와부면(瓦阜面, 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德沼里), 19일 화도면(和道面, 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磨石隅里) 등지에서 일어났다. 일시적으로 소강기에 빠졌다가 3월 26일에서 31일 사이에 절정기를 이루었다. 3월 26일 이후에는 양주군의 각 면에서 독립 만세 시위가 연이어 발생하였다. 그중 3월 29일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釜谷里)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이회명(李會明)·정윤삼(鄭允三)·김완순(金完順) 등과 함께 주도하였다. 부곡리는 3월 27일에도 이미 800여 명이 참가한 만세 시위가 한차례 벌어진 바 있었다. 3월 29일 부곡리 만세 시위는 이 만세 시위가 연속된 것이었다. 장흥면 교현리(橋峴里)와 울대리·부곡리 마을주민 주도로 만세 시위가 진행되었다. 3월 28일 밤 9~10시경에 이회명은 교현리 마을 음식점 박소사(朴召史) 집 앞에서 마을주민 14~15명을 규합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후에 29일에도 모임을 갖도록 하여 만세 운동을 이어나갔다. 다음 날인 29일 이른 아침에 이회명은 교현리 주민 50명을 이끌고 장흥면 면사무소가 있는 부곡리로 행진하였다. 한편, 29일 아침에 김완순은 부곡리 등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독립 만세를 부를 것이니 반드시 나가라고 외치며 만세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회명과 김완순의 활동에 공감하여 3월 29일 아침 울대리에서 정윤삼과 함께 미리 만들어두었던 태극기를 가지고 나와 마을 주민 약 70명에게 나눠주었다. 이후 선두에 서서 마을 주민과 함께 부곡리의 장흥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그 결과 울대리·부곡리·교현리 주민 약 300명이 면사무소 앞에 운집하게 되었다. 만세 시위가 크게 확대되자 시위대 위세에 눌린 일제 헌병도 처음에는 만세를 같이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 헌병이 만세 시위 진압에 나섰고 시위대는 이에 맞서 헌병보조원의 총기를 탈취하려고 시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 일제 헌병의 무차별 발포가 일어나 시위 현장에서 시위 참가자 중 3명이 부상하였고, 10여 명이 붙잡혔다. 이때 이회명·정윤삼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1919년 6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하고 1920년 2월 26일 만기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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