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근
金順根1882. 12. 19 ~ 1962. 8.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3
- · 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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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82년 12월 19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덕면(盈德面) 오포동(烏浦洞, 현 강구면 오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덕면 남석동(南石洞) 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영덕 지역 3·1운동 주도 세력은 기독교 세력과 기독교·유림의 연합 세력, 그리고 유림 세력의 세 계열로 구분된다. 영덕면의 경우 지품면(知品面) 원전동(院前洞)의 시위와 함께 기독교 세력이 주도했으며, 영해면(寧海面)·병곡면(柄谷面)·남정면(南亭面)의 시위는 기독교·유림의 연합 세력이, 지품면 신안동(新安洞)과 창수면(蒼水面)의 시위는 유림 세력이 주도하였다. 남석동 시장 만세 시위는 영덕면 금호동(錦湖洞) 교회 조사(助事, 안수받지 않은 목사) 강우근(姜佑根)이 주도하였다. 영덕 지역 만세 시위의 최초 기획자인 영덕군 지품면 낙평동(洛坪洞) 교회 조사 김세영(金世榮)의 부탁으로, 같은 교회 영수(領袖, 안수 받지 않은 장로) 김혁동(金爀東)이 강우근을 찾아갔다. 영덕읍 교회와 그 외 3개 교회를 감독하는 지위에 있었던 강우근은 김세영의 뜻에 찬동하였다. 강우근은 16일과 17일에 김암우(金岩佑)·이정규(李正奎)·강대열(姜大烈)·김용하(金龍河) 등에게 동지를 규합해 영덕읍내 장날을 기회로 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제의하였다. 3월 17일 송기주(宋基柱)와 함께 강대열로부터 만세 시위 동참 제안을 받고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거사 당일인 18일 영덕면 화개동(華開洞)과 금호동(錦湖洞), 남정면(南亭面) 남정동(南亭洞) 등지로부터 모인 50여 명의 기독교인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수백 명의 장꾼이 이에 호응하자 일본 군경은 주동 인물들을 검거하고 군중을 강제해산시켰다. 이때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그러나 영덕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지역 군중과 함께 영덕경찰서를 습격하여 구속된 인물들을 구출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에 일제 경찰은 영덕면의 일본인 제대 군인과 소방조합원들을 긴급 소집하였다. 더구나 영해(寧海)로 지원 나간 경찰서장 시게요시(茂義孫八)가 감금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급해진 일제 경찰은 강 입구에 입항 중인 일본인 어부들까지 불러들여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영덕읍내 만세 시위는 영해면·병곡면·창수면 등 격렬했던 영덕 북부의 만세 시위와 달리 비폭력이 관철된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이정규(李正奎)·안상룡(安尙龍)·송기주 등과 함께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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