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동
金淳同1874. 3. 23 ~ 1934. 5.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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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874년 3월 23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 도진동(桃津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순동(金順東)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경북 고령군(高靈郡) 우곡면(牛谷面) 도진동(桃津洞)에서 고인(雇人) 생활을 하다가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6일 저녁 고령군 우곡면 야정동(野亭洞)에 사는 박재필(朴在弼)은 전국으로 확산되는 독립 만세 운동에 호응하고자 고향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해야 할 당위성을 도진동의 박영화(朴英華)와 조상의 묘역을 단장하려고 모인 문중 사람에게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에 의기투합한 후 그날 밤 다수의 마을 주민과 함께 한국 독립 만세 운동의 거사를 계획하였다. 박재필은 시위 현장에서 쓸 나무로 된 나팔을 만들고, 박영화는 마을 주민의 참여를 권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박차천(朴且千)을 시켜 마을을 돌며 주민들에게 이러한 거사 계획을 널리 알리도록 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그들의 거사 소식에 의기투합하여 많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거사 장소인 마을 내 천변(川邊)으로 갔다. 이렇게 모인 동리 주민 100여 명과 함께 그날 밤 9시경 박재필이 나누어준 태극기를 흔들며 천변에서부터 마을 안을 행진하며 시위운동을 벌였고,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후 밤 12시경 시위 군중과 함께 우곡면사무소 앞에 도착해 독립 만세를 연호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선두에 서서 열렬히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독립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였다. 하지만 시위가 자정을 넘겨도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자 면장은 급히 시위대 앞으로 나와 일단 마무리하자고 간청하였다. 이에 시위대는 일단 해산하였지만 그 후 일제 경찰은 주동 인물인 박재필과 박영화를 비롯하여 시위에 참여한 마을 주민을 붙잡아 재판에 회부하였다. 이때 붙잡혀 1919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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