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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

金順永

1860. 6. 1 ~ 193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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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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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奉化)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봉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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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6)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6) 1860년 6월 1일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내성면(乃城面, 현 봉화읍) 해저리(海底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성연(聖然)이고, 초명은 김성호(金性浩)이다. 유생으로서 학파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저리 의성 김씨 문중의 유림이므로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을 연원으로 하는 김홍락(金弘洛) 학맥일 가능성이 크다. 1903년 효릉참봉(孝陵參奉)에 임용된 기록이 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탑골공원에서 낭독된 「기미독립선언서」에는 유림 인사가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김창숙(金昌淑)은 유림이 주도하는 독립청원서 운동을 구상하였다. 김창숙은 영남 유림의 종장 곽종석(郭鍾錫)을 운동의 대표로 추대하고, 성태영(成泰英)·류준근(柳濬根)·이중업(李中業)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서명자 수합에 나섰다. 청원서는 본래 ‘곽종석본’(영남본)과 ‘김복한본’(호서본) 두 가지가 있었는데, 전자의 내용에 후자의 서명자가 결합되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4월 5일 청원서를 가지고 중국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김창숙은 11일에 영문본 3,000매를 파리강화회의와 국내외 각종 기관에 발송하였다. 이를 파리장서운동이라고 하며, 서명에 참여한 137명을 가리켜 ‘기미유림단(己未儒林團)’이라 칭한다. 서명자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역에서 총 137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봉화 지역은 8명의 서명자를 배출하였는데, 이는 16명을 배출한 경북 성주, 14명이 서명한 대구·달성 지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숫자이다. 해저리에서는 김건영(金建永)·김창우(金昌禹)가 함께 서명에 참여하였다. 여기에는 서명자 수합을 주도하던 김창숙의 본관이 의성이었다는 점과 더불어 해저리가 부친 김호림(金頀林)의 고향이라는 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면우집(俛宇集)』의 「면우연보(俛宇年譜)」에 따르면 16위로 서명하였는데, 이는 유림단 내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음을 말해준다. 일제는 4월 초에 비로소 파리장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후 본격적인 서명자 체포에 나섰다. 해저리의 서명자들은 5월 28일에 체포되었다. 이기형(李基馨) 등과 함께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7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강학에 힘쓰다가 1934년 2월 28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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