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락
金承洛185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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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2) 1858년 함경북도 성진군(城津郡) 학서면(鶴西面) 업억리(業億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다 1919년 성진군의 3·1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성진군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0일 성진면(이후 성진읍) 제동병원(濟東病院) 앞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이날 만세 시위는 성진면 욱정교회(旭町敎會) 목사인 강학린(姜鶴麟)을 비롯한 성진지역 기독교의 주요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하였다. 독립선언서와 격문 3만 매를 인쇄하는 과정에서 캐나다 기독교 장로회(長老會)의 선교사인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rierson, 한국명 구례선(具禮善)) 목사의 도움이 있었다. 이 만세 시위는 함북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것으로, 이후 길주(吉州)와 명천(明川) 등 함북 전체로 만세 시위가 북상하면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성진군 다른 지역의 만세 시위도 촉발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성진면에서 사립보신학교(私立普信學校) 학생 40여 명과 기독교인 200여 명이 참여한 제2차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대는 무력으로 해산을 강행하는 일제 경찰에 맞서 투석전을 전개하였고, 그 과정에서 일제 경찰 5명이 다쳤다. 그날 밤 11시 학중면(鶴中面) 임명동(臨溟洞)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된 것을 시발로, 3월 11일 학동면(鶴東面) 방동(防洞)과 성진면, 12일 학성면(鶴城面)과 학중면 등 성진면을 둘러싸고 있는 인접 지역으로 만세 시위가 확산하였다. 만세 시위가 확산하면서 성진군의 북부 지역인 학서면에서도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와 이후 전국에서 전개되던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학서면 업억리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3월 11일 업억리의 주민을 규합하여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였다. 1919년 5월 2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자신의 행위는 한국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한 의사 표현이라 주장하며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9월 15일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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