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연
金時然1886. 7. 2 ~ 1944. 12.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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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6년 7월 2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죽백리(竹栢里, 현 평택시 죽백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안성군 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전개된 4월 1일 원곡면·양성면(陽城面)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28일 원곡면 내가천리(內加川里)에 있는 이시연(李時連) 집에서 원곡면 칠곡리(七谷里) 주민과 연합해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29일부터 31일까지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4월 1일 이근수(李根洙)가 와서 만세 시위 참여를 권유하자 마을 사람 7~8명과 함께 원곡면사무소 앞 만세 시위에 참석하였다. 저녁 8시경 횃불을 밝혀 들고 원곡면 사무소 앞에 모인 원곡면 주민 1,000여 명은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저녁 9시경 원곡면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양성주재소에서 시위를 하고 돌아오는 군중과 합류하였다.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순사주재소로 향하였다. 양성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가 있는 양성면 동항리(東恒里)에 도착해서 주재소 정면에 돌을 1회 던졌다. 주재소 순사들이 도망치자 주재소에 불을 지르는 것을 도왔다. 이어서 양성우편소로 이동해 책상·의자와 사무실 벽에 걸린 일장기를 불태워버렸다. 잡화상 소도사토(外里與手)의 집을 파괴하였고, 가구류 등을 불태웠다.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물품을 부수고 서류를 불태웠다. 4월 2일 새벽 다시 원곡면 외가천리로 돌아와 원곡면사무소의 서류를 불태우고 평택의 경부선 철도 침목 핀을 뽑아 파괴하고자 하였다. 원곡리 남산에 있는 일본 수비대를 방어할 돌망태를 준비하기도 하였으나 일본 수비대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피신하였다. 원곡·양성의 격렬한 만세 시위로 조선주차군 제20사단 보병 제40여단 제79연대 소속 장교 이하 25명이 경찰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일본 헌병은 시위 참가자를 검거하려고 야간 수색과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농사철이므로 경찰서장의 연설을 들으면 모두 사면해서 농사를 짓도록 해주겠다고 회유하였다. 피신 중 이 말을 믿고 당일 지정된 장소에 모이자, 일본 헌병대가 포위해 총칼로 위협하고 몽둥이로 폭행해 체포하였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 혐의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산입)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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