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金氏洪元植夫人1877. 10. 13 ~ 1919. 4.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관련 사건
- · 3.1운동
- · 제암리 학살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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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1) 1877년 10월 13일 경기 수원군(水原郡) 향남면(鄕南面, 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堤岩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5일 향남면 발안(發安) 장날을 이용하여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강태성(姜太成) 등과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동한 홍원식(洪元植)의 부인이다. 1919년 4월 5일 향남면 발안장터에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4월 5일 발안 장날에 주민들이 냇가에서 돌을 주워 주재소 주위로 날랐다. 이정근(李正根)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자 시위대도 일제히 만세를 외치며 8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남편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였다. 주재소 앞에서 투석을 하자 주재소 순사들이 위협사격을 가하였다. 그때 수원에서 도착한 일본군 수비대 1개 소대 병력의 무력 탄압으로 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4월 1일부터는 발안장터 주변 산 정상 80여 개소에 봉화를 올려 만세 시위를 이어갔다. 4월 15일 오후 한국인 순사보 조희창(趙熙彰)과 일본군 제20사단 39여단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가 이끄는 1개 소대 병력 30명이 제암리에 들어왔다. 순사 1명과 군인 2명을 소대의 반대 방면에 배치해 퇴각로를 차단하였다. 순사보 조희창에게 마을을 돌면서 15세 이상 남자는 할 말이 있으니 제암리 교회로 모이라고 하고 입구에서 오는 사람마다 키를 재어 총 길이보다 작은 아이는 돌려보내고, 큰 사람은 교회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열댓 명 정도밖에 모이지 않자 직접 찾아가 교회로 데려왔다. 사람들을 모은 아리타 도시오 중위는 교회 밖으로 나가서 세 번 날카로운 구령을 외쳤다. 그러자 일본군은 교회 안을 향해 총을 쏘고 불을 질렀다. 불은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주변 집들로 번졌고 불이 붙지 않은 집은 일본군이 돌아다니며 불을 붙여 마을 대부분의 집이 불에 탔다. 총소리가 나서 교회로 달려가 마을에 불이 난 것을 확인하고 다시 집에 가던 중 일본군이 총을 2번 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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