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암우
金岩佑1886. 4. 17 ~ 1936. 1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6)
관련 사건
- · 경북 영덕군 영덕면 남석동 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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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6) 1886년 4월 17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덕면(盈德面) 화수리(華水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영덕면 남석동(南石洞)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남석동 만세 시위는 강우근(姜佑根)이 주도하였다. 평소 일본의 강압적 통치에 불만을 가졌던 강우근은 3월 10일 『매일신보』를 통해 한국의 완전한 자주독립 쟁취를 위한 전국적인 독립 만세 시위 운동 소식을 접하고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독립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영덕읍내 교회 외 3개 교회의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김혁동(金爀東)으로부터 영덕군 지품면 낙평동(洛坪洞)교회 조사(助事, 안수받지 않은 목사) 김세영(金世榮)과 낙평동교회 구세군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 등의 영해면 거사 준비 소식을 접하고 이에 동참하고자 신도들을 규합해 영덕면 독립 만세 운동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3월 16일 영덕읍내 교회에서 강우근으로부터 한국 독립 희망의 뜻과 18일 영덕읍내 장날을 기해 전개할 만세 운동 계획을 전해 듣고, 취지에 동감하면 함께할 동지를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미 『매일신보』를 통해 독립 만세 운동 소식을 알고 있었고 한국 독립 실현을 희망하고 있었으므로 이에 동의하였다. 강대열(姜大烈) 등 다른 동지들과 더불어 거사일까지 화개동(華開洞)·금호동(錦湖洞)·남정동(南亭洞) 등지의 기독교인과 주민들에게 거사 계획을 은밀히 전파하면서 거사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또한 거사에 필요한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며 거사 준비에 전념하였다. 3월 18일 영덕면 화개동·금호동, 남정면 남정동 등의 기독교인 50여 명을 규합하여 영덕읍내 장터로 들어갔다. 오후 2시 반경 교인들과 함께 장터 복판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러자 수백 명의 군중이 일제히 호응하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군경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하고 주동자들을 체포하였다. 이때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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