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옥
金淵玉1872. 7. 2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이천군 이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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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872년 7월 20일 강원 이천군(伊川郡) 용포면(龍浦面) 창전리(倉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이천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이천군의 만세시위는 천도교인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2일 이천 천도교구는 평강 천도교구에서 「독립선언서」 15매를 전달받았다. 이 선언서를 천도교인이 중심이 되어 탑리 천도교구실에서 군내 여러 곳에 배부하였다. 이후 이천군의 만세시위는 4월 4일부터 12일 사이에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1919년 4월 4일 영양면(榮壤面) 장날 천도교인들이 태극기와 격문 등을 제작하며 처음 시위를 시작하자. 500여 명의 시위군중이 호응하였다. 다음날인 4월 5일에도 시위가 계속되었는데, 전날과 양상이 달랐다. 이날 시위대는 새벽 5시경 지하리(支下里)에 있는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돌을 던지며 만세를 불렀다. 결국 헌병 3명과 육탄전을 벌이다가 헌병이 쏜 총에 5명이 즉사하였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천군 읍내면 장날인 4월 6일 또다시 천도교인에 의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시위는 이천면 남좌리(南佐里)와 용포면 식전리 주민들이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남좌리에서는 박재곤(朴在坤)과 이원모(李元模)가 주도하였는데, 4월 6일 남좌리 주민들은 박재곤의 집에서 만든 대형 태극기를 들고 시장까지 행진하였다. 이날 용포면 창전리에서 정용규(鄭龍奎)·손은국(孫銀國)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 6일 창전리 시위 군중 100여 명을 이끌고 마을에서 봄 고사를 지낸 후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하여 비석리(碑石里)를 거쳐 탑리(塔里) 시장에 들어와 만세를 불렀다. 이처럼 4월 6일 시위를 주도하였다고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하였다. 1919년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자 상고하였다.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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