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連學
連學1904 ~ 1924. 6.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자성군 이평면(梨坪面) 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904년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서림면(西林面) 가성주리(可成州里)에서 출생했다. 이명은 김연학(金連鶴)이다. 성장과정과 가족관계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1924년 사망할 당시 고향에 두 명의 형제가 생존해 있었다. 도만(渡滿)시기와 과정도 알기 어려우나, 1920년 10월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 무렵 관전현(寬甸縣)에서 암살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대규모 독립군단(獨立軍團) 소속의 암살대가 아니라, 의기투합한 8명의 젊은이들이 만든 소규모 무장단체였다. 하지만 대원 모두가 권총을 소지하고 항일 활동을 전개한 짜임새 있는 단체였다. 경신참변 기간 중 대원 박형원(朴亨元)이 일본군에 체포됨으로써 암살대의 전모가 밝혀졌다. 1924년 참의부(參議部) 소속 일등병이 되어 평북 자성군(慈城郡) 임시 주둔대에 파견되었다. 『독립신문』(1925. 5. 5)에 “1923년 독립군단에 입대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참의부 이전의 단체인 통의부(統義府)에 가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참의부는 남만주(南滿洲)의 통합 독립운동단체인 통의부 의용군 소속 제1·2·3·5중대와 유격대 및 독립소대가 1924년 초, 이탈해 성립시킨 단체였다. 따라서 통의부에 입단했다가 참의부 대원이 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휘하 독립군단인 참의부는 적극적 항일무장투쟁을 주된 노선으로 삼고, 압록강변인 남만주 환인(桓仁)·통화(通化)·임강(臨江)·집안현(輯安縣) 등에 독립군을 배치하고 수시로 유격대를 국내로 진입시켰다. 본부가 있는 만주에는 암살대를, 국내에는 파견대를 주둔시켜 끊임없는 항일무장활동을 펼쳤다. 참사(參士) 박언채(朴彦采)와 이관석(李寬錫)이 이끈 자성 임시주둔대도 국내 파견대 중의 하나였다. 1924년 6월 11일 10명의 대원으로 1대를 구성해 자성군에 도착한 주둔대는 근거지를 구축하고, 곧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자성군내 일제 침략기관을 습격하고 친일부호의 집을 기습해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러던 중 국내통신원을 통해 자성군 이평면(梨坪面)의 한 민가에 일제 경찰대가 잠복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해 6월 25일, 주둔대는 민가를 기습해 일제 경찰 2명을 사살했으나, 김연학은 이등병 이길상(李吉祥)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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